고액자산가-중산층 1인당 자산 격차 962배로 벌어져

[금융중산층을 키우자] <1부> 여백을 채워라-① 부실한 허리

최근 들어 금융중산층이 줄어들면서 금융시장 불안도 커지고 있다. 서울 목동에 있는 증권사 객장에서 한 투자자가 시세판을 보고 있다. 서울경제DB



6개월새 자산 20% 급감… 총자산액 2년 반 만에 고액자산층에 추월 당해
유가증권 거래대금 반토막… 증시 투자 여력도 줄어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서모씨(49세)는 최근 보유하고 있는 주식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데다 1년 전에 팔려고 내놓았던 아파트마저 팔리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증시가 2,200선을 넘어설 때까지만 해도 주가가 올라가면서 아파트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이후 주가가 하락면서 1만5,000원대였던 보유주식의 가격이 1만원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파트를 살 때 빌렸던 대출 이자 부담까지 겹쳐 지금은 통장 잔액을 확인하기가 솔직히 두렵기까지 하다. 서씨는 "유럽위기다 뭐다 하면서 주가가 떨어질 때 다른 곳으로 투자해볼까도 생각해봤지만 현재 가진 자금이 1,000만원도 채 안 돼 이 돈으로는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더라"며 "아파트가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수익을 만들 방안도 딱히 떠오르지 않아 고민"이라고 하소연했다.

#서울 압구정동에 사는 안모씨(71세)는 지난해 거래하고 있던 한 증권사 지점장의 권유로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팔고 연 23%의 수익을 추구하는 주가연계증권(ELS)에 3억원, 브라질채권에 2억원, 그리고 수익형 부동산에 3억원 등 총 8억원을 분산투자하는 포트폴리오 조정을 했다. 그 결과 2009년까지만 해도 예금과 주식, 파생상품을 포함해 약 12억원가량을 보유하고 있던 금융자산도 현재는 15억원까지 불어났다.

유럽 재정위기와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금융중산층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자녀 교육비를 비롯한 생활비와 대출이자를 갚느라 자산을 불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나마 있는 주식과 펀드 등 투자상품들도 유럽위기 등 대외악재 때문에 자산이 되레 쪼그라들고 있고 가장 큰 자산인 부동산도 시장침체로 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하락하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15일 국내 8대 증권사의 투자일임 현황을 조사한 결과는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8대 증권사에 금융중산층으로 분류되는 투자일임액 1억원 미만 투자자의 올 5월말 평균 일임액은 470만원으로 지난해 말(635만원)에 비해 20% 이상 급감했다. 올 들어 주가가 떨어지고 펀드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금융중산층이 대거 투자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최근 투자자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상장지수펀드(ELW) 랩이나 사모 주가연계증권(ELS)의 최소 가입단위가 1,000만원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금융 중산층들은 이러한 상품을 접할 기회조차 없다는 의미다.

반면 10억원 이상 고액자산가의 1인당 투자일임액은 같은 기간 약 37억원에서 45억원으로 20% 이상 껑충 뛰었다.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증시가 불안해지자 ELS 등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으로 옮기면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자산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8대 증권사에서 일임자산 10억원 이상을 갖고 있는 고액자산가는 903명으로 1억원 미만인 금융중산층 고객(68만명)의 0.13%에 불과하다.

하지만 투자일임 총액을 놓고 보면 정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1억원 미만의 총 일임자산은 3조2,321억원이지만 10억원 이상은 4조872억원에 달했다. 고액자산가가 계좌 수에서는 중산층과 비교할 때 0.13%밖에 안 되지만 투자자산은 오히려 26% 이상 많은 것이다.

특히 2009년 금융중산층의 총 자산액(2조2,877억원)이 고액자산가(1조1,812억원)보다 두 배나 많았다는 점과 비교하면 2년 반 만에 형세가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액자산가와 금융중산층 간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1억원 미만과 10억원 이상 금융자산가의 1인당 자산격차는 2009년 864배에서 2010년에는 461배로 줄었지만 지난해 589배로 확대되더니 올 5월 말에는 962배로 더 벌어졌다. 그만큼 자산시장에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결국 전체 시장의 위축을 가져온다. 시장의 허리라 할 수 있는 금융중산층이 줄어들면서 투자여력도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7조~8조원 수준을 유지했던 유가증권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최근 절반 수준인 3조~4조원대에 그치고 있다. 자금의 여유가 없다 보니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전체 시장도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앞으로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고액자산가는 여윳돈을 통해 부동산뿐만 아니라 채권과 펀드, 주식 등으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추면서 리스크 관리와 투자수익 극대화를 추구할 수 있지만 금융중산층의 경우에는 보유자금의 한계 때문에 부동산과 펀드 외 다른 투자수단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형증권사의 한 PB담당 부장은 "고액자산가와 일반투자자의 차이는 여윳돈을 갖고 체계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며 "시장 침체기에 고액자산가들은 적극적으로 리스크 관리에 나설 수 있지만 전문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일반투자자들의 경우에는 부채의 증가와 투자수단의 제한으로 부담을 느끼게 되며 결국 금융자산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시장의 안정을 위해 자산관리 서비스의 대중화와 상품 진입장벽을 낮추는 등 금융중산층을 육성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다른 대형증권사의 리테일 담당 임원은 "최근 보이고 있는 시장침체는 대외적인 요인이 강하기는 하지만 내부체력이 부족한 것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며 "현재 일부 투자자에게 집중되고 있는 각종 서비스와 상품의 외연을 확장시켜나가는 게 시장의 파이도 키우고 내부 체력도 단단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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