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금융시장이 단기화하고 자금시장에서 은행의 역할이 축소된 반면 투신사들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한국은행은 6일 발간한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을 통해 콜시장과 RP(환매채)·CD(양도성예금증서)·CP(기업어음)·표지어음·통화안정증권 등 단기금융시장과 채권·주식시장에서 금리민감도가 높아져 금융기관간 자금이동이 급격히 진행됐다고 분석했다.
한은을 은행·종금사들의 비중과 역할이 크게 축소된 반면 투신·증권사들이 자금시장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증대됐다며 외환 위기 이후 자금시장 흐름과 문제점,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콜시장= 거래규모가 외환위기 이전보다 크게 늘어났다. 97년 월평균 193조조502억원에서 98년에는 396조2,967억원으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신용경색의 영향으로 은행과 은행신탁, 종금사 등이 기업여신 대신 투신사 수익증권 매입을 확대함에 따라 금융기관간 자금편재 현상이 심화돼 이를 메우기 위한 콜거래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올들어서도 투신사가 수신호조를 배경으로 공급을 확대하면서 규모가 꾸준히 증가, 5월까지 월평균 거래규모도 408조4,196억원에 달하고 있다.
투신사 역할이 커지면서 97년 11월중 15.9%에 불과하던 전체 콜론에서 투신사가 차지하는 비중도 올 5월에는 78.9%로 상승했다. 반면 은행신탁과 보험사의 비중은 각각 10.8%, 10.4%에서 6.0%, 1.0%로 하락했다.
문제는 콜시장이 은행의 지준 과부족 조절기능 뿐 아니라 제2금융권의 영업자금 조절시장 기능을 수행하면서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제약받는다는 점. 한은의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지준예치금의 변동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2금융권의 자금사정에 따라 콜금리가 움직이고 있다. 또 투신사 비중이 높아지면서 투신사 신탁계정과 고유계정간 거래에서와 같이 중개회사를 통한 브릿지거래의 성행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RP시장= 97년중 이전 5개년도 평균 증가액 7,601억원의 20배 달하는 15조9,356억원이나 늘어나는 급증세를 보였던 RP거래는 외환위기 이후 급감세로 돌아서 98년부터 올 5월까지 9조9,097억원이 감소했다. 부실금융기관 퇴출로 예금의 안정성이 크게 부각된 반면 RP는 예금자보호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
한은은 RP거래 활성화를 위해 매도기관 파산시 매수자의 채권회수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RP거래가 유가증권 매매거래인만큼 체결과 동시에 대상채권의 양수도가 이뤄져야 하나 실거래에 있어서는 매도기관이 보유하는 것이 관행화하고 있어 매도기관이 파산하는 경우 매수자의 채권회수가 어렵다는 것. 증권사처럼 보유 채권을 증권예탁원에 고객예탁분으로 구분해 예탁토록 규정한 기관외에는 매수자의 채권회수가 어렵다는 것이다.
매도채권 가격이 시장가격이 아닌 액면금액으로 평가됨에 따라 매도채권의 변제능력 불충분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매도기관의 지급불능시 매수자가 대상채권을 시장에서 처분하여 원리금을 전액회수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한은은 증권사, 종금사, 체신금융기관과 달리 은행에 대해 최단만기 제한하는 등 RP거래기관간 거래조건의 차별화로 공정경쟁이 저해되는 점과 거래에 대한 회계처리가 취급기관별로 상이해 거래의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개선과제로 꼽았다.
◇CD시장= 97,98년중 감소세를 지속하다 올들어 증가세로 돌아섰다. 97년 이후 CD감소는 표지어음과 RP등에 대해 경쟁력이 떨어진데다 은행의 MMDA(수시입출금식 자유예금) 취급으로 수요기반이 잠식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5개은행의 퇴출도 CD감소 요인. 그러나 올들어 5월까지 2조2,910억원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은행들이 자금을 단기화하기 위해 CD금리 연동부 대출상품으로 만드는 등 단기성 수신인 CD를 활성화한 데다 고객들도 은행정기예금 금리보다 금리가 다소 높은 CD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97년말과 비교해 비은행금융기관의 비중이 낮아지고 은행신탁의 비중이 높아진게 특징.
한은은 CD중개기관이 자금력부족으로 딜링보다는 발행시의 단순중개에 치중함으로써 유통시장이 형성되지 못하여 유동성이 크게 제약된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또 97년 지준부과대상으로 지정된 이후 CP, 표지어음, 환매조건부 채권 등 지준부과대상 제외 단기상품들과 금리경쟁력 떨어져 크게 활성화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금융계는 CD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은행이 기업에 대해 대출금 대신 CD를 교부하고 기업은 중개기관을 통해 이를 자금화하는 CD를 통한 꺾기 관행도 일부 되살아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CP시장= 외환위기를 겪으며 종금사위주에서 증권사중심으로 시장구도가 재편됐다. 97년말 전체의 79.8%를 차지하던 CP할인시장에서의 종금사 비중은 5월말 28.1%를 떨어졌다. 대신 같은 기간중 증권사 비중은 17.3%에서 64.7%로 뛰었다. 시장 자체가 축소된데다 부실종금사들이 대거 퇴출됐기 때문이다.
매수기관중에서는 97년말 9.4%에 불과하던 투신사 비중이 지난 5월말 현재 62.9%로 높아졌다.
한은 CP가 자기신용을 바탕으로 무담보 원칙에 의해 발행됨에도 불구하고 발행가능기업의 범위에 투기적 등급의 기업까지 포함됨으로써 CP에 대한 신뢰도 저하되고 있다는 점을 개선과제로 지적했다. CP발행 가능기업의 범위를 미국, 일본의 경우처럼 투자등급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이 단기자금 조달수단인 CP를 통해 설비투자자금 등 장기자금을 조달함에 따라 자금조달·운용의 기간불일치 심각하게 발생한다는 점도 고질적 문제. 97년중 한보, 기아, 한라 등의 부도사태도 CP부도에서 촉발됐다. 아직도 일부 기업의 경우 이같은 방식의 자금운용에 메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일본등에서는 CP발행요건으로 단기부채비율을 설정하고 CP상환자금 부족에 대비해 발행금액의 일정비율에 해당하는 은행지급보증 확보를 의무화하고 있다. 한은은 매수기관이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신뢰도 부족으로 계열기업군 발행 CP를 선호함에 따라 우량중소기업의 CP발행 제약된다는 점에 대해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제재내용을 구체화하는 한편 설립요건을 완화해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은은 할인기관이 CP를 매개로 동일계열기업간 자금지원을 연결해 주는 부당내부거래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자금여유기업이 동일계열소속 자금부족 기업에 대한 CP할인을 동한 통한 자금지원을 목적으로 할인기관에 자금을 예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화안정증권= 외환위기 이후 발행잔액 급증하고 있다. 94~97년중 연평균 1,828억원 감소했으나 98년중 22조2.034억원 순증발행되고 올들어서도 5월까지 5조3,039억원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총통화(M2)에 대한 통화채 비중도 97년말 11.5%에서 지난 5월말 현재 22.4%로 상승했다. 통화재 발행 과다는 이자가 이자를 낳은 기형구조를 유발하고 있다. 발행잔액이 과중하여 이자가 새로운 발행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발행잔액이 누적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통화채 지급이자는 98년중 4조8,412억원으로 본원통화 잔액의 23.4%를 차지했다. 올들어 5월까지 1조6,020억원이 이자 지급분으로 발행됐다.
◇채권시장= 실질적인 지표채권이 존재하지않고 신용평가기능 미흡으로 적절한 채권가격 산정이 곤란한 것으로 지적됐다. 국고채권이 작년 9월부터 대규모로 발행된 이후 거래규모가 확대되면서 외형적으로는 지표채권으로 자리잡고 있으나 발행시기 및 발행규모의 수시 변경, 최근월물의 거래부진 등으로 아직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지표채권의 만기수익률 곡선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 만기별 수익률및 투자성과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데다 채무불이행의 가능성이 있는 채권의 가격산정을 위한 기준역할도 미흡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은은 금융기관의 동일계열별 회사채 보유한도제의 실시로 회사채 발행시장에서는 우량기업인 5대그룹의 회사채발행이 줄어들면서 회사채 유통시장에서 거래도 위축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신용평가시 발행기업의 제한적인 재무정보 제공, 신용평가기관의 신용평가기법 낙후 등으로 인해 채권에 대한 정확한 신용평가가 이뤄지지 못함에 따라동일한 신용평가등급의 채권이라도 발행 및 유통수익률이 서로 크게 차이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홍우 기자 HONG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