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6자회담 앞날에 낀 황사

지난해 11월 이후 ‘동면 상태’에 빠져 있는 북핵 6자회담이 재개의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4개월간 6자회담을 둘러싼 가장 큰 이벤트는 지난 7일의 북미간 뉴욕 접촉. 그동안 금융 제재를 풀지 않는 한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북한이 뉴욕 접촉에서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달러 위폐 문제를 논의할 별도의 비상설협의체를 구성하자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미국은 이 제안을 사실상 거절하고 대신 북한에 아시아태평양자금세탁방지기구(AGP)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 이는 북한의 불법 행위와 관련해서는 어떤 타협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로 보인다. 미국의 이 같은 협상전략은 향후 6자회담에서 핵 문제를 논의할 때도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즉 북한이 핵 문제와 관련된 모든 의혹을 해소하고 핵 개발 의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조치가 마련되기 전까지는 어떤 상응조치도 내놓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는 94년 제네바합의의 실패로 얻은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제네바합의에서 미국은 북한의 핵 동결에 대한 대가로 중유 지원과 경수로 공사를 약속했다. 그러나 핵 동결은 언제든 해제할 수 있는 가역적인 조치인 반면 중유 및 경수로는 한번 투입된 자원을 회수하기 곤란한 비가역적인 조치였다는 점에서 불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합의 자체의 불균형을 반영하듯 북한은 2002년 12월 핵 동결 해제를 선언하고 이듬해 1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약속을 파기하는 데 따른 북한의 손실이 미국이나 한국ㆍ일본의 손실보다 크지 않다는 판단이 뒤따랐을 것이다. 미국이 위폐 문제뿐만 아니라 6자회담에 있어서도 이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 할 것은 자명하다. 위폐 문제와 관련, 미국은 재발을 차단할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북한이 원하는 것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핵 문제에 대해서도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입각한 북핵 문제 해결에는 6자회담 참가국 모두가 동의하고 있지만 미국은 행동의 ‘등가성’에 더욱 집착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다. 북한으로서는 뉴욕 접촉에서 나름의 양보안을 내놓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한 셈이 됐다. 이 때문에 6자회담 재개가 한층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천영우 6자회담 우리 측 수석대표가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중국 측은 6자회담의 정도에 황사가 끼어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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