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헌재 부총리…국내서 돈못쓰는 풍조가 나라를 가난하게 만들어 盧대통령 철학 존중하지만 내 나름의 방식도 중요…사퇴 표명設엔 말끝 흐려
입력 2004.07.20 17:52:05수정
2004.07.20 17:52:05
"뒷다리 잡아서야 시장경제 되겠나"
[인터뷰] 이헌재 부총리
부자들 소비 비난하면 나라 가난할수밖에분양원가 공개 국가지도자 진빠져서야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오대근기자
"이헌재는 파이팅이 강한 사람이다. 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싸우면서 여기까지 왔다. 촌스러운 짓은 안한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착잡한 표정으로 '사의 파동'에 대한 감정을 드러냈다. 때론 거친 표현을 써가며 '자문료 파문'에 대한 섭섭함을 가감 이 나타냈다.
30여분간의 승강이 끝에 20일 오후시40분부터 2시간여에 걸쳐 한남동 유엔빌리지 자택에서 자리를 같이한 이 부총리는 맥주캔을 들이켜 한국경제의 문제점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흉금을 털어놓았다. 그는 대화 곳곳에서 "중요한 것은 나라 경제를 바르게 만드는 것"이라며 '시장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피력했다.
그는 우선 자신의 사의 표명설과 관련, "사의를 표명했는지 확인해줄 수 없고 말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며 말끝을 흐리면서도 "그만둘 때가 되면 딱 그만둔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감정대로 행동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속마음을 전했다.
이 부총리는 먼저 이날 저녁자리에서 곽결호 환경부 장관과 나눴던 얘기를 소개했다. "환경비용을 아끼면 나중에 엄청난 비용을 물어야 한다. 나라 경제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어려워도 시장경제가 자리를 잡아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주의를 거스르는 사례들을 쏟아냈다. "3만달러짜리 보석을 프랑스 파리에서 사면 '죽일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같은 것을 4만달러에 서울에서 산다면 더 죽일 사람이 된다. 서울에서는 6,000달러짜리 원석 값만 나가고 나머지는 국내에 떨어진다. 이런 것을 거부하면 가난하게 사는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쓰도록 해야 한다"고 신조를 밝혔다.
논란이 일고 있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서는 '해프닝'이라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말이 되느냐. 온 나라가 이 문제에 국력을 쏟아붓고 국가 지도자들이 진이 빠지도록 매달리고 있다. 왜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그의 발언은 백지신탁 문제로 옮겨갔다. "제도가 시행되면 멀쩡한 사람들이 공직을 떠나야 한다. 미래를 생각하는 정책을 써야지, 왜 과거지향적인 정책을 쓰는 것인가"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 부분에서 최근 논란을 일으켰던 여성경제인협회의 '386발언'을 꺼냈다. 새벽5시까지 생각하던 끝에 자신의 생각을 집약하는 두 단어로 '경제하는 마음(이코노믹 마인드)'과 '경제하는 법(마켓 프린서플)'을 끄집어냈다는 것이다.
"내가 왜 30대, 40대의 중요성을 얘기했겠는가. 한 사람의 생산성 곡선을 그려보면 30대와 40대에 생산성이 급속도로 올라간다. 그런데 이들은 정치만 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386세대가 분발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내가 그런 얘기도 못하나. 아주 폴라이트하게 얘기한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독판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1만달러짜리 사람한테는 1만달러짜리 경제밖에 안된다."
정치권에 대한 이 부총리?서운함은 시장경제에 대한 회의감으로 표출됐다. 그는 "요즘은 정말 시장경제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그런 식으로 뒷다리를 잡아가지고 시장경제가 되겠느냐"고 일갈했다.
그의 발언은 결국 노무현 대통령으로 향했다. 이 부총리는 "대통령의 철학을 존중한다. 노 대통령이 억울한 점이 있다. 나라를 위해 애쓰고 있는데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경제적인 상황이 어렵다"며 "하지만 내 나름의 방식도 중요하다. 모든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야 한다"고 충언했다. 그는 이 부분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로라 타이슨을 현직 때 만난 일을 소개했다.
"현역으로 모시고 있는 대통령과 힐러리에 대한 욕을 막 하더라.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애정과 믿음이 있었다. 우리 사회에는 그런 게 없다." 이 부총리는 "(386들이) 이라크 파병을 매도하고 있다"며 "나는 보수나 극우가 아니지만 국가는 국가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정을 30분 이상 넘긴 시간, 이 부총리는 허리와 목이 좋지 않다며 피곤한 기색을 보인 뒤 "내가 그만둘 작정이면 그만두겠다고 분명히 얘기하겠다"며 단호한 입장을 재삼 강조했다.
권홍우기자 hongw@sed.co.kr
김영기기자 young@sed.co.kr
입력시간 : 2004-07-20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