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은 본디 줄을 잘 안 섭니다”
작년 2월15일 한 시사평론가와 대담에서 “노무현의 뒤에는 줄, 이른바 결집된 세력이 없는 게 흠이라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대한 노 당선자의 대답이다. 노 당선자는 “(우리 정치권에는)상황을 보고 대세에 편승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게 오늘날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비극중 하나”라며 소신없이 움직이는 우리 정치인들의 줄대기 정치를 꼬집었다.
국내정치인 최초의 팬클럽이라는 `노사모`. 그 회원들은 노 당선자를 한때 `바보 노무현`이라고 불렀다. 패할 줄 뻔히 알면서도 지역구도를 깨야 한다며 부산에 출마해 연거푸 낙마한 그의 `소신`과 `배짱`있는 이력에 대한 찬사가 함축돼 있고 노 당선자 자신도 `남자는 죽을 자리라도 가야할 땐 가야 한다`고 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사람은 누구나 위험을 피하고 싶어하는데 노무현 당선자는 그 위험을 피하지 않고 맞서 싸워왔다는 점에서 배짱있는 사람이고, 나는 배짱있는 남자를 좋아한다”며 대선때 노당선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당선자의 이런 소신론과 부정적인 언론관이 널리 알려졌던 작년 12월30일. 공정거래위원회는 2001년7월11일 국내 10대 일간지와 3대 방송사의 부당내부거래행위에 대해 부과했던 242억원의 과징금을 전격 취소했다. 취소사유는 신문사의 경영상황과 공익적 기능을 감안했다는 게 요지다. 그러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공정위의 이 같은 결정에 감사원의 특별감사로 대응했고 공정위에는 지금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8월 임기가 만료되는 이남기 위원장의 경질은 확정된 것처럼 나돌고 있다.
잘못된 정책은 바로 잡혀야 하지만 위원들의 전원 합의로 결정된 사항을 특별감사로 대응하는 것은 노 정권에서도 공무원들의 정책결정에 짐이 될 수 있다. 공정위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3명의 상임위원, 각 분야 최고전문가인 4명의 민간 비상임위원 등 9명이 모두 합의해 결정하는 합의체기구다. 공정위원장이 독단으로 내리는 결정이 아닌 것이다.
공정위가 내린 결론에 다소 문제점이 발견되더라도 그동안 해왔던 관행과 원칙에 맞게 일을 처리했다면 공정위의 결정은 소신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노당선자의 소신철학에도 맞지 않을까.
<정승량기자(경제부) sch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