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는 사회적인 약자이다. 사용자와의 상대적 비교에서 유일한 생산수단이 근로인 노동자는 분명 약자이다. 그런 맥락에서 장애인과 여성, 노인 등도 사회적인 약자의 범주에 함께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약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제도적인 장치를 다양하게 마련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성숙된 사회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80년대 중반 질풍노도같이 일어났던 노동운동은 우리사회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데 일조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노조의 연이은 파업과 그 예고가 권익을 보호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집단이기주의의 실현으로 가고 있지는 않나 하는 걱정이 든다. 지금은 세계경제가 동반침체하면서 우리경제의 앞길도 캄캄하다. 또한 `두 자릿수 임금인상률을 요구하고 경영에 간섭하는 노조가 존재하는 한 한국은 투자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는 뼈아픈 지적이 외국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곱지 않은 눈으로 파업을 쳐다보는 국민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가 집단행동을 자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집단의 이익 앞에 국민 전체의 이익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 한국경제가 와르르 무너져 국민소득 2만 달러는 고사하고 현상유지조차도 되지 않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런데 더욱 걱정인 것은 우리사회를 `파업천국`으로 몰아왔던 정부의 태도이다. 모름지기 법을 집행하는 데에는 수미일관(首尾一貫)하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특히 노사간의 갈등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측을 가능케 하는 `원칙`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이익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양자 모두에게 자제와 타협을 모색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 몇 주간 노사갈등 속에서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우왕좌왕에 갈팡질팡의 연속이었다. 법과 원칙의 상실로 인한 혼란과 무질서의 증폭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익을 위해서는 집단행동이 최고라는 그릇된 인식이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한 각 이해집단의 도를 넘는 이익추구는 계속될 것이다. 이제 국가회생의 대명제 앞에서 우리 모두 냉철해 져야 한다. 무엇이 법과 원칙인지 보여주는 유능한 정부, 훗날의 더 큰 이익을 내다보며 스스로 자제할 줄 아는 성숙한 노조, 그리고 노동자를 파트너로서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용자, 지금은 이런 모습들이 참으로 아쉬운 때다.
<오세훈(국회의원ㆍ한나라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