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인터넷에서 자주 들르는 사이트가 두개가 있다. 하나는 ‘ebook21’이라는 전자책 전문 사이트고 또 하나는 30여년 전에 졸업한 초등학교 동창회 사이트다.
예전에는 독서를 으레 책으로만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인류의 정신문화를 종이가 지배하고 또 종이에 담아 그것을 후세에 전달해왔던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오랜 세월 종이는 그렇게 인류의 문화 전반을 지배하고 전달할 것이다.
몇천년을 이어온 그것을 이제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이 인터넷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책을 사자면 서점으로 나가 그것을 구입하거나 주문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종이책으로만 그것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 필요한 책의 내용을 다운받아 읽기도 한다.
글을 읽고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내게는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 온 것이다. 오래 전에 발표됐지만 그때 미처 읽지 못했던 단편소설 하나까지 다시 찾아 읽을 수 있다. 뜻밖에도 예전에 챙겨 읽어야 했는데 미처 읽지 못하고 흘려버린 작품들이 그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의외로 많다. 인터넷시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컴퓨터로 글을 쓰고, 컴퓨터로 글을 보내고, 컴퓨터로 작품을 읽는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작가 생활을 한 지 20년 정도 되는데 습작 시절까지 포함한다 해도 20몇년 남짓한 세월 속에 처음에는 원고지 위에 펜으로 한자 한자 꼭꼭 눌러 글을 썼다. 그러다 그것보다는 타자기를 사용하는 것이 능률적인 것 같아서 잠시 타자기로 바꿨던 적이 있었으며, 그 다음 컴퓨터와 타자기의 중간 형태쯤 되는 워드프로세서를 쓰다가 이후에는 모든 작업을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다. 예전의 ‘원고 쓰기’가 ‘원고 치기’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컴퓨터로 글만 쓰는 게 아니라 다른 작가의 작품까지도 찾아 읽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달라진 세상 속에 또 요즘 자주 찾아가고 있는 인터넷 동창회는 오히려 그 반대다. 한해 졸업생이 쉰명도 채 되지 않았던 궁벽한 산촌의 초등학교 동창회다. 도시의 학교처럼 너와 나로만 만난 것이 아니라 같은 동네에서 누구 집 몇째 아들과 누구 집 몇째 딸로 운동장에서 만났던 것인 만큼 그 친구 하나만 알고 지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온 집안의 부모 형제들에 대해서도 안부를 나눈다. 전형적인 농경사회 속에서 유년을 보내고 또 유년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동창이라기보다는 한 동네, 한 대소가의 육친 같은 사이들이다.
며칠 전 그 인터넷 동창회에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자신의 옛날 사진을 올렸다. 졸업 앨범 대신 받아본 단체사진 속에는 스포츠 머리를 한 친구보다 까까머리 친구들이 더 많다. 운동화를 신은 아이는 한두명뿐 대부분이 ‘왕자표’나 ‘타이어표’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볼수록 앙증맞은 추억의 코고무신을 다시 본 것도 그곳이었고 귀 중간까지 올라간 원단의 단발머리 소녀를 다시 본 것도 그 인터넷 동창회에 올라온 옛날 사진을 통해서였다.
그래 봐야 불과 30여년 전의 일이었다. 마을 앞길에 자동차가 한대만 들어와도 공부 시간에 모두 교실 밖으로 뛰어나가 자동차를 구경하던 시절이 30여년 전에 있었던 것이다. 봄과 여름ㆍ가을에는 아예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었고 땅이 꽁꽁 언 겨울에야 냇가를 따라 국유림에서 벤 나무를 깔고 그 나무를 실으러 산판차가 들어왔다.
그런 그때의 산골 소년이 30년 후 컴퓨터로 소설을 쓰고, 컴퓨터로 그 소설을 출판사에 보내며, 또 책이 아닌 컴퓨터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다운받아 읽으며, 인터넷을 통해 그동안 아주 까마득히 잊었던 옛 친구들의 까까머리와 깡통 단발머리와 추억의 검정고무신을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30년 후에는 또 어떤 세상이 올까. 문명이나 문화의 발전 속도로만 본다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은 분명하고 그래서 나중에는 오히려 그 나아짐이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숨막히게 하지는 않을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저 코고무신의 단발머리 소녀들과 검정고무신의 까까머리 소년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