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위 세기의 명골퍼 잭 니클로스와 20세기 마지막 황제 타이거 우즈의 우열은 누구도 가리기 힘들다. 그러나 밀레니엄 스타를 뽑는 투표인만큼 아직 세울 기록이 더 많은 우즈보다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니클로스가 1위에 선정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니클로스는 메이저 대회 18승을 포함해 생애 통산 PGA투어 70승을 올렸다. 64년과 72년부터 2년연속 두 차례에 걸쳐 PGA투어 최다승 기록을 수립한 니클로스는 현재 시니어투어에서 활약하며 골프의류 사업가로, 또 골프장 설계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올해 PGA투어에 입문한 게리 니클로스가 아들로 골프명문가를 이루고 있다. 우즈는 여러 설명이 필요없는 선수. 그러나 우즈는 20세기 골퍼라기보다는 21세기의 스타로 꼽아야 할 것 같다. 우즈 자신도 『지금껏 내가 세운 기록보다는 앞으로 내가 그 기록들을 경신할 수 일을지를 눈여겨 봐달라』고 주문하고 있다.3위 아놀드 파머 3살때 골프클럽을 처음 잡았고 7살때 100을 깼으며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첫 대회에서 처음 언더파(71타)를 기록한 파머는 살아 온 행적이 곧 골프계의 역사일 만큼 많은 기록을 남겼다. 54년 US아마추어선수권 왕좌에 올라 첫 메이저 타이틀을 따냈던 파머는 두달뒤 프로로 전향했고, 다음해 PGA정규투어에 합류해 캐나다오픈 우승으로 우승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PGA투어에서 통산60승을 올렸고 「올해의 선수」에도 2번이나 선정된 파머가 가장 기뻐했던 것은 시니어투어 데뷔전인 90년 시니어 스킨스에서 우승했을 때다. 잭 니클로스를 제치고 우승컵을 차지했기 때문. 파머는 『내 생애 가장 만족스런 우승이었다』면서 『PGA정규투어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73년 봅 호프클래식에서도 니클로스를 눌렀다』고 말해 평생 니클로스와 라이벌관계였다. TV시대 초창기 노동자 출신이라는 배경과 멈출줄 모르는 승부욕 등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려 골프인구증가에 커다란 역할을 했던 파머는 지난 97년 전립선 암을 수술을 받은 후 암예방 및 치료캠페인에 전념하고 있다.
4위 벤 호건 골프계에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을 심어준 인물이다. 기량이 절정에 달했던 때 세계2차대전이 터져 43년부터 45년까지 골프클럽 대신 공군비행사로 근무했던 호건은 49년 교통사고로 저승문턱까지 갔다 기사회생했다. 호건은 당시 아내를 구하기 위해 차 앞으로 달려들었고 쇄골과 척추, 발목, 갈비뼈 등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됐다. 의사들은 호건이 제대로 걷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건은 『그때 모두들 안된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굳은 의지로 재활훈련에 몰두했던 호건은 다시 우뚝 섰고 이듬해 US오픈 우승컵을 안을 정도로 의지가 강한 골퍼다.
5위 로버트 존스 주니어 바비 존스로 더 알려진 로버트 존스 주니어는 아마추어다. 「긴장하며 골프치기는 싫다」며 프로전향을 거부한 그는 한 해 라운드 수를 80회 이하로 철저히 제한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며 은퇴후인 33년 오거스타 골프장을 세워 마스터스 대회의 전신인 초청골프대회를 창설했다.
존스가 오거스타 골프장을 세운 이유는 「사람들 눈을 피해 좋아하는 친구들과 마음놓고 골프를 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존스는 23년부터 30년까지 4번의 US오픈과 브리티시오픈 3차례, US아마추어 챔피언십 5번, 그리고 브리티시아마추어 챔피언십 1승 등 당시의 그랜드 슬램을 이룩했다.
6위 페인 스튜어트 「그린의 신사」 스튜어트는 니커보커스(무릎아래에서 졸라매는 짧은 바지와 긴 양말) 스타일의 독특한 의상과 사냥모자와 깔끔한 매너로 골프팬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지난 10월 비행기사고로 사망해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올 US오픈에서 대회 사상 가장 긴 4.5㎙의 마지막 퍼팅을 파로 성공시켜 우승컵을 안았다. 스튜어트는 87년 베이힐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 후 상금전액을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병원에 기부하기도 했다. 89 USPGA선수권 91, 99 US오픈 등 메이저대회 3승을 포함해 미국 PGA투어 통산 11승을 기록했다. 비행기사고 당시 그는 세계랭킹 8위였다. 지난 10월 스튜어트의 장례식에서 추모객들은 그에 대해 『헌신적인 가장이자 신사였던 위대한 챔피언』이라고 칭송했다.
7위 프레드 커플스 부드러운 스윙과 느긋한 경기자세, 그리고 나이를 짐작키 어려운 동안(童顔)이 특징인 커플스. 그는 자녀들의 등교길을 돌봐주거나 아내와 함께 시장을 자주보는 골퍼로 유명하다. 투어 참가횟수가 적은 편이며 경기출전 때에도 연습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PGA투어 통산 14승, 국제대회 5승 등으로 정상급골퍼로 군림하고 있다. 지난 92년엔 마스터스 우승을 포함해 3승을 기록했고 상금왕 타이틀과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평균 최소타수 선수에게 주는 바든트로피도 91, 92년에 수상했다. 커플스의 「즐기는 골프」는 포스트시즌에서 빛을 더욱 발했다. 「스킨스게임 제왕」 「이벤트게임 황제」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 그는 포스트시즌의 이벤트대회에서만 무려 20승을 거둬 총680만달러의 상금을 벌어들였다.
8위 바이런 넬슨 1937년 마스터스 등 메이저 5승을 포함해 미국 PGA투어에서 모두 52승을 거뒀다. 특히 지난 45년 한햇동안 35경기에 출전해 18승을 올렸고 전무후무한 11연승의 기록을 세웠다.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시즌 최다승이자 최다연승이다. 무엇보다 넬슨은 마스터스 우승 당시 최종일 4타차를 극복하고 우승컵을 안은 것으로 유명하다. 4타 앞서 있던 선두 굴달은 파3의 12번홀에서 더블보기를 기록한데 이어 13번홀에서도 보기를 기록해 순식간에 3타를 까먹고 무너졌다. 그러나 넬슨은 같은 12번홀에서 버디를 했고, 13번홀에서는 이글을 기록해 2타차로 따돌리고 정상을 밟았다. 마스터스 개최지인 오거스타내셔널GC는 넬슨의 이같은 극적인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13번홀에 「넬슨 브리지」를 세워 기념하고 있다.
김진영기자EAGLEK@SED.CO.KR
최창호기자CHCHOI@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