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부터 갤러리 현대에서 전시되는 오치균의 '인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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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자신이라도 그리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절박감.'
어찌할 바를 몰라하던 사내는 벌거벗은 채 침대에 누워 뒹굴기만 했다. 좁은 방에 소리나는 것이라곤 낡은 TV 뿐. 그런 자신을 거울을 통해 마주치고는 이불을 뒤집어 쓴 채 괴로워했다.
뭉크가 '절규'로써 공포를 표현했다면 오치균(53)은 집요하게 자신을 뒤쫓는 처절함과 절박감을 자화상으로 담았다. 강원도 사북과 뉴욕, 산타페 시리즈 등 풍경화로 유명한 그가 좀체 내보이지 않았던 인물화 40여 점을 전시한다. '소외된 인간'이라는 전시제목으로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16일부터 막을 올린다.
서울대 미대 재학시절 아이들을 가르치며 고학했고 힘들게 돈을 모아 1986년 뉴욕으로 유학 간 작가는 지인에게 속아 전재산을 날렸다. 그런 배경에서 탄생한 자화상은 유학시절의 외로움과 빈곤,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 등을 표출한다. 형광빛으로 몸을 비추는 TV는 일방성과 잔혹성, 소통부재의 현실을 상징한다. 알몸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거울도 마찬가지다.
자화상의 감정이 고스란히 감상자에게까지 전이되지만 오늘의 작가를 가능하게 한 자양분 같은 그림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작가는 '묻어두려 한' 작품이었으나 정영목 서울대 교수가 전시를 권유한 것도 그 같은 이유다.
힘든 시절을 거친 이후 2006년부터 탄력을 받기 시작한 오화백은 경매 낙찰 총액 상위 10위에 드는 '스타작가'로 성장했다. 활황일 때는 평균 낙찰률 95%, 작품당 낙찰가 2억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때 얻은 '블루칩' '잘 팔리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편하지 만은 않다. "박세리, 박찬호 선수가 상금생각에 스윙할까요? 저 역시 붓질을 하면서 돈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름다우냐, 내 것 답냐만 생각할 뿐이죠."
작가는 "수십년간 (작품이) 안 팔리는 것에 익숙했으니 당시 상당히 고양된 것은 사실이지만, 인기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진다면 즉시 평가가 달라지고 외면 받지 않겠는가"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1~2층에는 86~89년작 자화상, 지하 1층에는 90년대 지두화(손가락으로 그린 그림)로 표현한 가족 인물화가 걸렸다. 전시는 5월10일까지다. (02)2287-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