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비교적 큰 시장 혼란 없이 출구전략의 빗장을 열었다. 버냉키 의장이 5년 만에 양적완화(QE) 규모를 줄이면서도 경기부양적인 통화정책을 이어갈 것이라는 강력한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선제 안내)를 내놓자 "불확실성이 걷혔다"며 미국 증시는 환호했다. 하지만 아시아 금융시장은 혼조세를 보이면서 출구전략이 가져올 후폭풍에 긴장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19일 코스피지수는 이날 장 초반 전날보다 17.39포인트(0.88%) 오른 1,997.02포인트까지 급등했으나 장 후반으로 갈수록 밀리며 전날 대비 1.02포인트(0.05%) 상승한 1,975.65포인트로 마감했다. 코스닥지수도 490.22포인트까지 올랐으나 전날보다 1.48포인트(0.30%) 하락한 484.17포인트로 장을 마쳤다. 후반으로 갈수록 상승폭을 반납한 것은 달러 강세에 따른 엔화 가치 하락 때문이다. 이날 엔화는 도쿄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04엔을 돌파하며 엔저에 한층 탄력이 붙었다. 이에 따라 일본의 닛케이225지수는 249.72포인트(1.70%) 오른 1만5,859.22로 장을 마감, 6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중국과 인도 등 그외 아시아 국가들은 장 초반 호조를 나타냈으나 신흥국에 대한 자금유출 우려가 제기되면서 혼조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에 앞서 18일(현지시간) 미 뉴욕증시에서도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각각 1.84%, 1.66% 급등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나스닥종합지수도 1.15% 오르며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8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시작됐던 연준의 사상 유례없는 비전통적 통화정책 실험이 끝나간다는 불안감을 미 경기회복 기대감과 버냉키 의장의 비둘기파적 발언이 압도한 셈이다.
연준은 이날 17일부터 개최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끝내고 현재 월 850억달러인 양적완화 규모를 내년 1월부터 750억달러로 100억달러 줄이기로 했다. 각각 450억달러, 400억달러인 국채와 모기지(주택담보부채권) 매입규모가 50억달러씩 줄어든다. 연준이 채권 매입규모 축소에 나서기는 2008년 11월 1차 양적완화를 시작한 지 5년 만이다. 반면 연준은 실업률이 목표치인 6.5% 아래로 떨어질 때까지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0∼0.25%)으로 유지하겠다고 강조하면서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묘수도 발휘했다.
이처럼 연준이 통화정책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을 시도한 것은 미 경기가 회복되고 있어 양적완화 축소의 충격파를 흡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연준은 이날 성명에서 최근 미 경제활동이 '완만한 속도(moderate pace)'로 확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준은 이날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내년 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8~3.1%에서 2.8~3.2%로, 올해 전망치도 2.0∼2.3%에서 2.2∼2.3%로 소폭 상향 조정했다. 반면 내년 실업률 예상치는 기존의 6.4∼6.8%에서 6.3∼6.6%로 낮춰 잡았다.
버냉키 의장은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채권 매입규모를 줄이는 것은 경기 및 고용 상황이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경기지표를 예의 주시해 연준 목표치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면 채권 매입액수를 점차 줄여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