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의 화두가 '소통'이었다면 올해의 화두는 '국격'인 듯하다. 그런데 국격이 높다는 게 어떤 것인지 한 마디로 말하기가 참 어렵다. 두달 동안 글을 쓸 기회가 생긴 김에 내가 그간 보고 겪은 일 중에 내가 닮고 싶고, 우리가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습들을 반추해보려고 한다.
9ㆍ11테러가 있던 날 나는 뉴욕 맨해튼에 살고 있었다.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최대한 빨리 물과 현금ㆍ비상식량을 구하러 나갔다. 집 근처 슈퍼마켓은 붐비지 않았다. 우선 들고 올 수 있을 만큼 물을 샀다. 기회가 되는대로 또 사다 놓아야지 하면서 은행으로 향했다. 현금인출기 앞에도 평소보다 두세명 더 줄을 서 있는 정도였다.
학교에서 딸아이와 함께 직장을 다니는 친구의 아이도 데리고 왔다. 집에 오는 길에 슈퍼마켓을 들르니 점원 여럿이 물통을 옮기고 있었다. 팔지 않으려나 보다고 걱정했는데 '사고난 곳에 필요하다는 뉴스를 보고 물을 보내려 한다'는 것이었다.
매캐한 연기와 먼지가 80블록이나 떨어진 우리집까지 날아왔다. 오후 늦게 아이 엄마가 나타났다. 마침 문을 연 미장원이 있어서 머리를 자르고 왔다고 했다. 주욱 늘어놓은 물통을 본 친구는 이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당시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말한 대로 우리가 최대한 동요하지 않고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는 것만이 테러리스트를 이기는 길이라고 했다. 콜럼비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 친구가 바보도 아닐진대 마치 '우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라고 하는 듯 들렸다. 그의 평정심이 놀라웠다.
무역센터 건물이 주저앉기 전 올라가는 구조원과 내려오는 피난민들이 두줄로 질서정연하게 계단을 오르내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구조원들의 말을 듣고 고분고분 걸어내려 오다가 미처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살겠다고 아수라장이 됐다면 한사람도 살아 내려오지 못했을 것이다.
맨해튼은 놀라우리만치 빨리 정리됐다. 그 다음날은 버스로 출근했다가 걸어서 퇴근했지만 그 다음날은 버스로 퇴근까지 할 수 있었다.
일상을 지키는 평정심, 위기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평정한 국격이 곧 테러를 이겨내는 더 강한 무기가 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