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 한파에 떠는 대기업] 임금인상 등 압박 와중에… 재계 "결국 보따리 풀어야 하나"

檢 잇단 대기업 수사 카드에 "일종의 경고 아니겠나" 긴장
"공정위·국세청까지 동원… 길들이기 나설수도" 불안
최저임금 인상·일자리 등 정부 정책 협조 놓고 고심

재계를 향한 전방위 사정압박에 기업들이 떨고 있다. 검찰이 포스코를 시작으로 잇달아 대기업 수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탓이다.

기업들은 정부가 임금인상과 일자리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일이 터지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경영 상황도 나쁜데 기업에 대한 압박이 이어지면 국내외 투자를 비롯한 경영 전반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예전처럼 경제 검찰인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을 동원해 기업을 전방위로 압박하지 않을까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17일 "문제가 있는 부분은 사정 당국이 파헤치는 게 맞지만 수사나 조사가 길어지면 해당 기업이나 같은 업종에 있는 회사는 큰 타격을 입는다"며 "최대한 빨리 끝내 불확실성을 줄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정부가 밑그림을 갖고 접근하는 게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과거 정부에서도 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이 쓰였다.

이명박 정부는 정유사들의 기름값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공정위를 앞세워 4,300억원의 담합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최근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동반성장 분위기에 편승해 신세계에 계열사 빵집을 지원했다고 과징금을 매기기도 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기름값을 내리기 위해 정유사에 담합 혐의를 씌우면서 업황이 크게 위축됐고 지금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동반성장을 해야 한다며 대형마트에 가한 압력이나 건설사의 4대강 공사 담합 제재 같은 정권 차원의 압박 사례는 무수히 많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임금인상처럼 정부의 정책 협조 요구에 기업들이 움직이지 않자 정부가 본보기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정부는 "공교롭게 시기가 겹친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 특정 목적을 갖고 있다거나 기업을 옥죄려는 의도가 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문제가 있으니 수사하고 조사하는 것이지 문제가 없는데 무슨 수로 정부가 사건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느냐"고 밝혔다.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업체들은 없다. 실제 수사선에 올랐다는 일부 기업은 1~2년 전부터 검찰이 해당 내용을 알고 있던 사안으로 알려졌다. 한때 내사종결을 검토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지만 최근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부터 알고 있던 내용을 최근에 외부에 흘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재계를 향한 일종의 경고 아니겠느냐"며 "최근 정부의 정책 협조 요구에 대기업들이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것처럼 비쳤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당장 전경련만 해도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읍소나 당정청의 최저임금 인상 합의에도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임금을 올리면 신규 일자리가 줄어든다"며 반기를 들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법인세 인상은 신중해달라는 의견을 새누리당에 전달했다.

문제는 사정 정국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진행 중인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국정조사나 방산비리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국세청과 공정위도 움직일 수 있다. 대기업을 길들이기 위해 정부가 국세청과 공정위를 전가의 보도처럼 써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연말정산 대란과 무상복지 중단 사태에서 보듯 세수도 부족하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결국 큰 보따리(선물)를 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자조 섞인 얘기가 들린다.

정부 정책 협조 요구에 임금인상과 신규 일자리 확대로 화답해야 한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차원에서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으로 두고 있고 정부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은 기업들도 나서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정부가 요구한 임금인상과 일자리 창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이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 상황에 부담을 더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전경련이 비금융 상장기업 1,103개사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 2012년 11.4%에 달했던 매출액 증가율은 지난해는 9월 현재 -1.5%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4~3·4분기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30.3%나 감소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을 강제로 움직인다고 경제가 근본적으로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부작용만 크다"며 "건설이나 조선·정유처럼 업황이 좋지 않은 기업들은 더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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