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등 부동산을) 살 마음이 전혀 없던 사람들이 사는 쪽으로 많이 돌아섰습니다. 최근 한 달 새 부동산 거래가 4건이나 성사됐어요. 두서너 달 전만 해도 보유 부동산에 대한 점검 위주의 상담이 주류였다면 요즘은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한 시중은행 강남지점 관계자)
시중은행의 프라이빗뱅킹(PB) 창구와 대출 상담 코너에서 부동산과 관련한 문의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투자 기회를 물색하던 자산가들이 부동산에 대한 본격적인 타진에 들어가면서 연출되고 있는 풍경이다. 김인응 우리은행 압구정 현대지점장은 "강남 재건축 단지 가격이 들썩이기 시작한 한 달 전쯤부터 부동산을 바라보는 고객들의 시각이 체감될 정도로 변했다"며 "아파트를 사기 위해 예금을 깨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 시장에 온기가 돌면서 은행 간 경쟁도 가열되고 있다. 먹거리 부족에 시달려온 은행 입장에서는 당장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고객을 유치하려는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한 시중은행 인사는 "일선 창구에서는 이미 고객 쟁탈전이 점입가경인 곳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관망성 자금, 부동산 입질 시작해=시중은행 PB 관계자들은 이미 부동산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증시 부진 등으로 예금 등에 잠겨 있던 자금이 부동산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다. 김 지점장은 "내 집을 소유한 고객이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집을 사려는 경우와 전세를 살던 고객이 아예 집을 구입하려는 수요가 늘어났다"며 "망설이던 고객이 움직이면서 실수요자 중심의 거래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형일 하나은행 PB본부장도 "VIP의 경우 저금리로 안정적 수익을 낼 수 있는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꾸준하던 차에 최근 부동산 시세에 대한 기대감도 일면서 중소형 빌딩이나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 고객과 달리 매각 차익보다는 안정적 수익이나 상속 측면에서 접근하는 만큼 강남권 우량 매물을 주로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부동산으로의 자금 유입을 인정하면서도 급격한 쏠림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몇 년째 침체됐던 부동산에 대한 기대심리가 살아나고 있지만 고령화 등 큰 흐름 속에서 금융 자산이 늘어나는 기본 골격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란 게 그 이유다.
◇수익 목마른 은행, 금리 경쟁 도질 듯=은행들의 주담대 잔액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늘어나는 패턴이 보인다.
우리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지난해 1·4분기 48조6,345억원에서 올해 1월 말 53조4,500억원으로 5조원 가까이 늘었다. 국민은행도 1월 말 현재 주담대 잔액이 78조6,000억원을 기록해 6개월여 전에 비해 2조원 이상 늘었다. 은행들은 가계 빚이 1,000조원을 넘어서 공격적인 마케팅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한 시중은행 PB팀장은 "기존 대출 고객의 경우 3년이 지나면 중도상환 수수료가 없어 갈아타기 수요가 발생한다"며 "신규 고객은 물론 이런 갈아타기 수요를 잡기 위해 금리 할인 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 은행 부행장은 "불황 속에서 가계·기업 할 것 없이 대출 수요가 꺼진 상황이라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는 기미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며 "우량 고객 확보를 명분으로 한 금리 경쟁이 가열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