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이 한국 증시 농락한다

한국 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의 투자행태가 정상적인 수준을 넘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과도한 수준의 고액배당과 유상감자로 자본을 회수하는 것은 점잖은 편이다.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의 주식을 매집한뒤 주식소각 등 무리한 주가부양을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심지어 인수합병(M&A) 가능성을 거론하며 주가를 끌어올린뒤 처분하는 등 투기적 행태로 증시를 교란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외국인 해도 해도 너무한다 "한국 시장을 자기네들 놀이터로 아는 거 아닙니까?" 8일 증시 관계자들은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다. 헤르메스투자운용이 3일 삼성물산 보유지분을 전량 처분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매도 직전에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M&A 가능성을 흘려 주가상승을 부채질하는 등 작전세력과 다를바 없는 행동을 했다고 비난했다. 영국계 자본으로 투기자본과는 거리가 멀다고 알려진 헤르메스의 행태를 보면 외국인들이 한국시장에서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의 탄식도 나왔다. 외국인의 주가 띄우기는 헤르메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주주 지분을 웃도는 주식을 매집해 놓고 보통주와 우선주 소각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주식소각으로 주당가치가 상승할 경우 주가도 오르기 때문이다. 한솔제지가 대표적 사례다. 한솔제지는 지난 5월 외국인 주주 요구에 밀려 우선주 86만주를 전량 소각해야 했다. 우선주 소각에 쏟아부은 40억원은 지난해 순이익 129억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우량 계열사 지분 매각도 주가부양을 위한 외국인의 단골 주문사항이다. 헤르메스가 삼성물산에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요구한 것은 소버린이 SK측에 SK텔레콤 지분 을 매각하라고 압박한 사례와 같다. 외국인은 이 과정에서 경영권 위협을 서슴지 않고 있다. 영국계 TCI자산운용은 최근 KT&G에 자사주 전 량소각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다른 펀드와 연합해 경영진을 교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외국인 투기자본 대책 시급해 한국시장에서 외국인 장악력이 커지면서 빠져나가는 국부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외국인이 국내 기업에서 받아간 배당금은 올해 4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외국인 배당액은 지난 2001년 1조2501억원, 2002년 2조1038억원, 2003년 2조7044억원 등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외국인, 특히 투기자본이 한국 증시에서 단물만 빼먹고 있다는 비난이 높아지면서 정부당국은 규제강화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최소한 외국계 투기자본의 무리한 고배당과 유상감자 등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 6일 "고배당과 유상감자 등에 대해 불합리한 부문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상장사협의회가 6일 개최한 '상장회사 배당 및 유상감자제도 개선방안 심포지엄'에서는 유상감자 사전 인가제와 고배당 사전예고제 시행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됐다. 현재 사후보고하도록 돼 있는 유상감자를 사전인가로 강화하고, 당기순이익을 초과하는 등의 고배당은 사전에 예고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배당과 유상감자에 대한 제한은 외국인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 연기금이 대부분인 외국계 투자자 특성상 배당을 통한 자금 회수가 주요 과제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국내투자자 비중을 높여나가는 방법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빈기범 증권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에 대한 규제는 차별논란을 불러올수 있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실체공개 등 투명성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국내 기관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달부터 출범한 사모주식펀드(PEF) 조기 정착 등 기관 투자자 육성과 연기금의 투자정책 개선으로 토종자본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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