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영화'살인의 추억'(2003년)에서 몇 장면 되지 않은 배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차가운 말투와 침착한 표정. 그는 진짜 살인범일 것 같았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 '최종병기 활'(2011년). 그는 첫 시대극 영화로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주인공은 배우 박해일이다.
배우 박해일(36ㆍ사진)이 오는 9일 개봉될 영화 '고령화가족'으로 다시 관객과 만난다. 첫 영화 흥행에 참패한 뒤 40살 나이에 집으로 돌아오는 허세 영화감독 '인모' 역이다.
서울 신문로 한 찻집에서 만난 박해일은 "연기인으로 살아오면서 제대로 연기가 안됐을 때 상처를 많이 받는 스타일"이라며 영화내용이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령화가족'은 평화롭던 엄마 집에 나이 값을 못하는 백수자녀들이 모여들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담았다.
"어머니로 나오는 배우 윤여정과 첫째 형 윤제문, 동생 공효진과 그의 딸 진지희가 한 가족으로 나오는데 모두가 개성 강한 배우들이라서 재미있게 찍었어요."
박해일은 가족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집 안 한쪽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액자를 가훈처럼 걸어두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박해일은 결혼을 일찍한 배우에도 속한다. "원래 연극배우로 출발했는데 영화에 입문하기 전 배우와 관객으로 만나 일찍 결혼하게 됐다"고 그는 자연스럽게 설명했다.
촬영이 없이 쉴 때는 거리를 산보하거나 책도 읽고 산에도 가끔 간다고 했다. "평소 생활할 때 관객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배우가 그런 시선들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면 또 다른 제약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모자 쓰고 자유롭게 시내를 활보하고 있는 거죠."
그는 특히 등산을 자주하는 편이라고 소개했다. "영화를 찍다 보면 몇 개월간 무리를 지어서 스태프들에 둘러싸여 영화 현장에서 지내야 되거든요. 촬영을 마치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결국 혼자 올라가서 마음을 비우고 내려오는 거죠." 그의 입에서 아차산, 청계산, 안산 등 서울근교 산 이름들이 오르내린다.
연기관은 뭘까. 30대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뚜렷하게 잡힌 것 같지는 않다"는 게 그의 말이다. 다만 가급적 유연하게 사고하자는 마음가짐을 갖는고 했다. "배우는 연출하는 감독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작품을 만들어나가게 됩니다. 배우가 고정관념을 갖게 되면 연출자의 연기지도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이예요."
박해일은 자신을 만든 힘은 연극에 있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대학로에서 아동극부터 시작했어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무대에 도전한 게 1997년. 그때 무대에 섰던 경험이 지금 뒷심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번에 영화를 같이한 윤제문 선배도 그때 한 무대에 섰었죠."
박해일은 영화 에피소드를 소개해달라고 하자"영화에 유독 삼겹살 먹는 장면이 많이 나와 촬영이 끝난 뒤 회식할 때는 배우들끼리 따로 횟집에 갈 정도로 삽겹살에 질렸다"며 웃었다. 영화 밖 박해일은 유머러스하고 소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