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 나의 인생/나춘호 예림당회장] 45.엉뚱한 생각 황당한 아이디어

가정이나 직장에서, 사회 생활을 하노라면 일을 하는 과정이나 설비 때문에 불편을 겪을 때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불편을 참고 견딘다. 조금만 생각해 보고 손을 쓰면 얼마든지 불편을 줄일 수 있는데도 말이다.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 반드시 현재 하는 것보다 더 빨리,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장한평 사옥 시절, 영업 경리가 계산서를 끊어 4층에서 지하층 물류부까지 하루에도 수 십번씩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저녁이면 다리가 붓고 힘이 든다고 하기에 간단한 아이디어로 해결해 준 적이 있다. 창밖에 플라스틱 홈통을 설치해 지하로 연결시킨 것이다. 계산서를 말아 고무밴드로 동여 매어 집어넣으면 물류부 책상 위에 떨어지게 만든 것이다. 일 속에 묻혔다가 잠시 휴식을 취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몸과 마음을 푹 쉬게 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몸은 가만 있는데 머리 속은 더 많은 생각으로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밤이면 잠을 못 자 고통을 받곤 하는데, 이어지는 생각의 꼬리를 자르고 잠을 푹 잘 수만 있다면 저체중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생각들 속에는 회사 일도 있고 집안일도 있지만 더러 남들이 생각하기에 엉뚱하다 할 만한 것들도 많은데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는 것도 오랜 습관이다. 서울 시내 택시 기사보다야 못하겠지만 나는 웬만한 운전자보다 서울 지리와 도로 사정에 더 밝다. 70년대 말 처음 차를 사서 운전할 때 서울 시내는 요즘처럼 복잡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시간적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다니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로 다녔다. `오늘은 이쪽으로 가 볼까?` `저쪽으로 가면 어디로 이어질까?` 하며 되도록 이면 새로운 길로 다니다 보니 간선도로나 지선도로, 웬만한 지역은 골목길까지 알게 됐다. 내가 일부러 이렇게 다닌 것은 도로망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모험심,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호기심이 많다 보면 엉뚱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그 속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도 생기게 마련이다. 60년대부터 내 수첩에 기록했던 엉뚱한 생각, 황당한 아이디어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면 남미여행을 열기구로 하는 것이다. 열기구를 타고 허공으로 직진했다가 12시간 후에 내리면 지구의 자전에 따라 반대편인 아르헨티나에 도착하지 않을까? 스물 몇 시간의 비행기 여행보다 편할 것이다. 정수기를 대신해 보통 나무보다 삼투압 작용이 10배가 강한 수목을 울타리 안에 몇 그루만 심어 둔다면 고로쇠 수액을 마시듯 식수문제를 해결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봤다. 건강에 도움 주는 담배개발도 마찬가지다. 담배는 백해무익 하다지만 피우면 피울수록 건강에 도움 되는 상품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빛의 증폭 소리를 증폭시키는 것처럼 작은 빛을 증폭할 수 있다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겠고 무선 송전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100여 가지가 넘는데 이미 실현된 것도 있고 앞으로 실현 가능한 것,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아이디어도 있다. 나는 우리 회사 직원들한테 `책이란 종이와 글자`라는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한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되지 못하지만 사람이 개를 물어 상처를 냈다면 뉴스가 되듯이 거꾸로 생각도 해보고 다른 각도에서 보는 눈도 길러야 한다. 예림당이 다른 출판사에 한발 앞서 새로운 책들을 많이 펴낸 데에는 나의 엉뚱한 생각, 황당한 아이디어가 한몫을 했다고 여겨진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그림책이나 작은 그림책, 녹음테이프가 있는 동화책, 반도체를 이용한 그림책 등이 그렇다. 아시아태평양출판협회장ㆍ예림 경기식물원이사장ㆍ전(前)대한출판문화협회장 <정리=임동석기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