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추경 대신 기금·불용예산 등 동원… 재정 확대 6조 넘을 듯

[하반기 경제운용 뭐가 나오나]
기금서 최대 3조 가능… 공공자금도 활용할 듯
내수 살리기 위해 투자 규제 완화하고 소비는 세제지원 주력

경기둔화로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세일 행사를 이용해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 정부는 다음주 발표하는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에서 재정확대를 통한 내수활성화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서울경제DB

정부가 다음주 중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을 내놓는다. 유로존의 위기가 깊어지면서 예상과 달리 우리 경제의 올해 성장률도 목표치를 밑돌아 3.3%에서 3.4%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만큼 하반기 경제운용의 틀은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흐름 속에서 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추가경정예산 등 공격적인 부양 카드를 꺼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성장 곡선이 더 고꾸라질 경우에 대비해 마지막 카드를 비축해놓아야 하는 탓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어느 때보다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을 짜는 데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 내의 기류를 보면 수출의 마이너스를 완충하기 위해 내수를 살리는 방안을 만들되 내수의 양 축인 투자는 규제완화를, 소비는 조세정책의 미시적 지원책을 각각 동원하는 방안이 예상된다.

◇2조1,000억원+알파 재정 효과 동원=기획재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현재 정부가 나랏빚을 더 내지 않고 편성할 수 있는 추가경정예산은 최대 2조1,000억원 수준"이라며 "하반기 중에는 추경을 편성하지 않고도 그보다 더 큰 재정지출 효과를 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기가 하강 사이클을 타고 있지만 정부는 올 하반기 추경 편성 대신 기금 지출 확대와 공공기관 여유자금, 정부 예산 불용ㆍ이월액 활용 등으로 통해 경기를 살리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말을 해석해볼 때 하반기 재정확대 규모를 다양한 방식을 조합해 최소한 추경 여유분인 2조1,000억원을 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이 고위 관계자는 특히 "기금을 확대하더라도 절대로 차입하지 않고 순수 여유자금 내에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돈을 빌리지 않고 정부가 하반기에 늘릴 수 있는 기금규모는 얼마일까. 재정부에 따르면 65개 정부 기금 중 금융성ㆍ계정성(외국환평형기금 등) 기금을 제외한 54개 기금의 올해 여유자금 운용규모는 약 89조~90조원선. 그러나 이는 현금 외에도 증권 등 여러 형태로 운용되고 있고 자금운용 기간도 1년 이내에서부터 수년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한꺼번에 다 끌어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늘릴 수 있는 기금의 한계는 각 기금 내 사업별로 20~30% 이내이므로 실제로 증액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제약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하반기 기금확대 규모에 대해 재정부 관계자들은 함구하고 있지만 학계에서는 대략 2조~3조원 수준이 되지 않겠느냐고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정부가 늘린 기금 증가액이 약 1조4,000억원선인데 이 중 복권당첨자 지급용 기금증액분 3,500억원을 빼면 1조5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올해 하반기 경기전망이 전년 동기보다 더 불투명하다는 점을 감안해 이보다 더 큰 폭으로 늘린다고 해도 2배 이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학계의 관측이다. 이에 따라 최대 2조~3조원선이라는 추정치가 도출된다.

이를 적용하면 올해의 정부 기금 지출 총액은 당초 국회 확정액인 97조3,000억원(54개 기금 기준)에서 100조원 초반대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기금의 성격에 따라 이렇게 늘린 종잣돈을 기반으로 수배의 보증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있으므로 그 실제적인 재정확대 효과는 액면상의 기금증액 규모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더해 공공기관의 가용자금을 바닥까지 긁어 모으면 약 3,000억원 정도 된다는 게 또 다른 재정부 고위 관계자의 설명. 정부가 최근 기금과 공공기관 여유자금의 일부를 활용해 5,00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 지원용 펀드(일명 중소기업 지원금리 인하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것이 공공기관 자금을 활용한 준(準)재정확대 정책의 일환이다. 아울러 연간 13조~15조원 정도로 추산되는 예산 이월ㆍ불용액 중 최대한 쥐어짜면 최소한 3조원 이상은 더 재정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재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기금 증액분 약 2조~3조원, 공공기관 여유자금 약 3,000억원, 이월ㆍ불용예산 활용액 최소 3조원 등을 감안할 때 하반기의 실질적 재정확대 규모는 6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이처럼 재정확대를 하는 것만으로는 즉효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재정지출과 감세 등으로 푼 나랏돈이 국내총생산(GDP)의 6.4%에 이르며 기준금리를 해당 기간 중 약 325bp(1bp=0.01%) 내린 것을 감안하면 이미 시장에는 엄청난 유동성이 풀려 있어 정부가 돈을 일시적으로 더 쓴다고 큰 자극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 같은 재정확대가 효과를 내도록 하기 위해 기업투자 활성화와 내수진작, 부동산 거래 정상화 등을 주제로 하는 규제완화책도 함께 담아 조만간 하반기 경제운용 방안으로 발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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