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병철 회장의 23주기인 19일. 젊은 삼성을 연일 강조하며 이재용 CEO 시대를 기정사실화한 이건희 삼성 회장은 또 한번 통큰 결단을 내렸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원칙 아래 그룹 조직을 부활시킨 한편 총괄책임자로 김순택 부회장을 임명한 것이다. 이번 인사는 한마디로 이재용 CEO 체제를 고려한 것 외에도 삼성의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룹 부활, 이재용ㆍ김순택ㆍ최지성 삼각편대=삼성 하면 그룹 조직이 어떤 회사보다 강한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비서실ㆍ구조조정본부ㆍ전략기획실 등 명칭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지만 이들 조직은 그룹 전반을 총괄하며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다.
컨트롤타워는 삼성 특검 등의 사태를 거치면서 비판의 중심에 섰고, 결국 2년 전 이 회장의 퇴진과 함께 해체됐다. 그러나 지난 3월 이 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하면서 그룹 조직 부활이 거론됐고 이번에 복원이 결정된 것이다.
그룹 부활 조직의 이면에는 우선 올해 말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할 이 부사장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다. 이 부사장이 하루빨리 삼성그룹 전반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이를 보좌할 총괄조직이 필요해서다.
새로 부활될 그룹 조직은 이 회장을 보좌하고 이 부사장을 도와 삼성의 전반을 관할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사가 사장단협의회 등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뤄진 점도 3세 경영체제 구축을 위한 이 회장의 결단임을 엿볼 수 있다.
젊은 삼성 조직에서는 이에 따라 이 부사장, 김 부회장, 최지성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등 3각편대가 당분간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올해 말 정기인사에서 세대교체 폭이 당초 예상보다 더욱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젊은 피로 삼성의 미래 준비한다=이번 인사의 특징은 또 젊은 조직과 리더로 삼성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뜻도 내포돼 있다. 이 회장이 이번 인사 배경에 대해 "21세기의 변화가 예상보다 더 빠르고 심하다.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그룹 전체의 힘을 모으고 사람도 바꿔야 한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이 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하면서 '향후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제품이 사라질지 모른다'고 위기론을 강조한 것과 다르지 않다. 3월 복귀 이후 이 회장은 8개월여간 적잖은 고민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학수 고문과 함께 중국 출장길에 오르면서 이 회장은 이 고문과 많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부정적 이미지의 전략기획실을 이끌었던 이 고문과 김인주 상담역이 복원된 조직의 책임자로 임명되지 않고 계열사 고문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그룹 조직'으로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이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