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2'가 주식형펀드 투자바구니서 밀려난다

올 들어 주가 급락 삼성전자·현대차
수익률 상위 10개 펀드서 비중 줄여
대안 찾기도 쉽지 않아 운용사 고심


'주식형펀드는 시가총액 비중대로 담을 수밖에 없다'던 운용업계의 불문율이 깨지고 있다. 시가총액 상위 1·2위 종목으로 일명 '빅2'라 불리는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투자바구니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전체 시가총액의 24% 이상을 차지하면서 펀드매니저들은 이들을 투자바구니에 가장 많이 담았다. 올해 초 대형 수출주들이 부진을 털어내고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흘러나오면서 빅2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연초 후 이들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투자바구니에서 빅2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12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의뢰해 인덱스·중소형·테마·배당주 등을 제외한 일반 주식형펀드(설정액 10억원 이상)의 연초 후 수익률(10월8일 기준)을 분석했더니 수익률 상위 10개 펀드가 삼성전자와 현대차 편입비중을 크게 줄였다.

20.48%의 수익률로 연초 후 가장 높은 성과를 기록하는 '프랭클린골드적립식(주식)'은 지난 1월2일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편입비중이 16.98%, 현대차가 5.59%였지만 6월부터 각각 0%가 됐다. 프랭클린템플턴투자신탁운용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주가가 부정적으로 전망되면서 최근 이들 주식을 전량 처분했다"고 설명했다. 8월 초 기준 이 펀드가 담은 주식 가운데 편입 비중 상위 5개 종목은 현대글로비스(6.50%), SK C&C(6.27%), 네이버(5.66%), 세운메디칼(5.53%), 한국콜마(0.08%)다.

연초 후 수익률 2위와 3위를 달리고 있는 '메리츠e-코리아[주식]'와 '메리츠코리아 1[주식]종류A'는 올해 1월2일 각각 편입 주식 가운데 10.22%를 삼성전자로 채웠지만 4월부터 포트폴리오(편입 종목 분포)에서 완전히 뺐다. 현대차는 연초부터 편입하지 않았다.

'트러스톤밸류웨이자[주식]A클래스'는 올해 1월2일 주식 가운데 4.99%가 삼성전자였지만 2월 초 3.95%로 줄었고 3월부터는 삼성전자가 포트폴리오에서 빠졌다. 연초 1.86% 담겼던 현대차는 2월 초 2.07%로 소폭 상승했지만 5월부터 이 펀드 구성 종목에서 제외됐다.

이처럼 국내 일반주식형 펀드들이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외면하는 것은 최근 부진한 주가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운용사들은 올해 중순까지만 해도 정부의 배당확대 기대감과 경기 부양 정책 속에 빅2 주가 상승에 기대를 걸었지만 이들이 배당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고 사업 전망 역시 불투명해지면서 처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형운용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삼성전자가 올 상반기 지배구조 개편 이슈로 주목받던 상황에서 배당 활성화 정책이라는 정책적 효과까지 더해지며 주가가 크게 오를 것으로 보였지만, 삼성전자가 배당에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휴대폰 사업까지 부정적으로 전망되면서 큰 실망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자동차 산업이 침체하면서 현대차 역시 3년째 매출이 정체돼 있지만 배당에 대한 기대감은 갖고 있었다"며 "하지만 신차효과가 눈에 띄지 않았고 한전부지에 10조원 넘게 쏟아부으면서 보유 매력이 감소하자 들고 있던 현대차 주식을 모두 처분했다"고 덧붙였다.

빅2의 투자 매력이 감소하자 운용사들의 고민 역시 깊어지고 있다. 강대권 PSG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포함해 정보기술(IT)·자동차·조선·기계 산업이 국내 시가총액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는데 나머지 3분의1에서 대안을 찾기도 쉽지 않다"며 "화장품이나 게임주를 포함해 내수주들이 대체 투자처로 각광 받고 있지만 이미 주가가 부담스러운 수준까지 올라 있는 상황이라 현금자산을 늘리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석원 하이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빅2의 주가가 바닥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당분간 반등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며 "벤치마크보다 덜 보유하는 방식으로 운용하는 것 외에 별다른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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