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운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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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새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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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 도자기 전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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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은 소통의 역사를 상징하는 곳이다.
변변한 탈 것이 없던 시절, 그저 두 다리에 몸을 의지해 길을 떠나는 나그네들이 산을 넘는 가뿐 숨결이 배인 곳. 험한 지세를 바탕으로 적과 맞서 ‘투쟁’이라는 형태로 소통한 곳, 등짐진 행상들이 드나들며 재넘어 소식을 전하던 곳이 바로 문경이다. 그래서 문경의 정체성은 ‘길’과 ‘산’이다.
문경새재(조령ㆍ鳥嶺)는 사실 그렇게 높은 고개는 아니다. 해발 642㎙이니 서울 근교 관악산이나 청계산과 비슷한 높이다. 그런데도 새도 넘기 어렵다고 하여 ‘새재’이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는 급경사로 불쑥 솟아있는데다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힘든 고개였기 때문이다.
고을 이름에 들어간 ‘문’자는 대부분 ‘문 문(門)’인데 반해 문경은 ‘들을 문(聞)’을 쓴다. 글자대로라면 문경(聞慶)은 ‘경사스런 소식을 듣는다’는 뜻이기 때문에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즐겨찾았고, 이 점이 고장의 특징이 됐다.
과거 시험길만 해도 그렇다. 옛날 영남에서 중부 내륙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조령, 추풍령, 죽령 세 곳이 있었다. 이 가운데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는 영남 사림 유생들은 꼭 조령을 넘었다. 추풍령은 ‘추풍낙엽’이란 말이 떠올라 피했고 죽령은 ‘죽쑨다’는 말이 싫어 피했다고 하니, 조령이 있는 문경은 고을 이름 자체만으로도 가장 지나기 좋은 길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문경 땅에는 주막에서 여비를 탕진했다거나 호기 좋게 과부 집을 덮쳤다가 아예 눌러 앉은 선비들에 대한 우스갯소리도 허다하게 전해진다.
문경은 찻사발로도 으뜸으로 꼽히는 곳인데, 이것 또한 ‘산’과 ‘길’에 관계가 있다. 산에는 좋은 흙과 물, 땔감이 있는데다 사방팔방 통하는 교통로까지 있는 까닭이 문경 도자기가 크게 발달한 이유다. 문경 도자기는 원래 막사발이라고 부르던 민중들의 그릇으로 유명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일본인들이 이를 예술품으로 받들며 차를 마시는 데 쓰기 시작한 뒤로 막사발은 예술품 찻사발로 변모했다. 문경 도자기 전시관에는 사발 하나에 1억5,000만 원이나 하는 작품도 전시돼 있다.
문경은 선종 불교의 중심이기도 하다. 수려한 산을 뒤로하고 물소리 시원한 계곡을 옆에 둔 봉암사(鳳巖寺)는 예부터 승려들이 선(禪)을 공부하기 위해 반드시 들르는 곳이었다. 현재도 조계종의 공식 수도원으로, 승려가 되기 위한 6년 공부 중 1년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이다. 공부하기 위한 절인 탓에 산문을 폐쇄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막는데, 일년에 단 하루 사월 초파일(올해는 5월 5일)에만 절을 공개하니 이번 참에 꼭 한번 가볼만한 곳이다. 절 인근 백운대 또한 초파일에만 일반인들의 접근이 가능해 자연의 풍광이 그대로 살아 있다.
등짐지고 길을 걷다 주막에서 막걸리 한 잔 걸치는 시절은 갔지만 문경의 위상은 요즘도 그대로다. 관광객 등산객 등 지난해에만 모두 407만 명(문경시청 집계)이 문경을 다녀갔다.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치다.
문경은 철로자전거, 사격장 등 현대식 관광자원을 개발해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경사스런 소식을 기대하며 문경 나들이 한번 해볼만 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