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기업들이 내년 경영계획 수립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환율 변동성 증대와 고질적인 대내외 경기침체를 헤쳐나가기도 쉽지 않은 판에 중국의 거센 추격과 경영환경을 옥죄는 정부·정치권발 리스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SK·CJ그룹 등은 회장의 부재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실적악화 속에서 삼성·한화그룹 간 빅딜 같은 사업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라는 점도 변수를 키우고 있다. 자칫 투자와 고용 위축을 부르지 않을까 우려된다.
대내외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크다면 국내 리스크만이라도 줄여주고 규제개혁을 통해 투자와 기업가정신을 북돋우는 게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할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덩어리 규제개혁은 고사하고 잔챙이 규제완화마저 야당 등에 발목이 잡혀 지지부진하다. 야당은 줄곧 법인세 인상을 외쳐왔고 정부는 기업소득의 가계환류, 온실가스 감축 등을 명분으로 세제나 배출권거래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통상임금·불법파견 등을 둘러싼 법원의 판결로 기업들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노사갈등이 고조되고 있는데도 정부의 법령 보완은 느려터지기만 하다. 국내 대표 기업들마저 실적이 줄줄이 하락해 여력이 부족한 가운데 늘어나는 것은 비용과 부담뿐이니 투자와 일자리를 늘려 경제살리기에 동참하라고 압박한다고 해서 씨알이 먹히겠는가.
이제라도 정부가 일관성 있는 정책과 덩어리 규제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기업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정책도 진정성을 갖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일본이 장기침체에 빠져든 것은 생산성이 떨어지고 이자 갚기도 버거운 좀비기업·부실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으로 이들의 퇴출이 지연된 게 핵심 요인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대출만기를 연장해주는 땜질식 처방을 거듭해 최근 3년 새 좀비기업의 자산비중이 13%에서 15.6%로 늘어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좀비기업 비중을 5.6%로 낮추면 정상 기업의 고용을 11만명 늘릴 수 있다. 금융지원 관행을 개선해 구조조정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경제 전반의 역동성도 높아진다.
기업들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신성장동력을 발굴·육성하는 데 매진해야 할 것이다. 기존 분야에서 중국에 추월당하지 않고 중국 기업에 부품·소재·장비를 팔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중일 간 경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