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은행들은 퇴직연금으로 유치한 자금을 자사 예금으로 운용하지 못하고 전액 다른 은행의 예금이나 주식ㆍ채권ㆍ펀드 등에 투자해야 한다.
이에 따라 총 72조원(올 9월 말 기준)에 이르는 퇴직연금 자산운용시장에 일대 격변이 예상된다. 특히 이번 조치로 삼성생명 등 삼성계열사와 KB국민ㆍ신한 등 대형은행으로의 자금 쏠림이 심해질 것으로 보여 퇴직연금 사업권을 반납하는 중소형 금융회사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9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퇴직연금과 관련해 자사원리금보장상품 운용 비율을 기존 50%에서 아예 없애는 내용을 담은 퇴직연금 감독규정 개정을 추진한다. 자사원리금보장상품이란 퇴직연금을 유치한 은행들의 자사 예금상품을 말한다.
당국은 입법예고 등을 거쳐 이르면 내년부터 개정안을 적용할 계획이다.
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당국이 내부적으로 퇴직연금을 자사 예금으로 운용하는 것 자체를 불허하는 방향으로 감독규정을 고치기로 확정했다"며 "많은 은행이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당국의 개정의지가 강해 방침이 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국은 이번 조치가 은행의 재무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은행들은 퇴직연금을 주식ㆍ채권 등 자본시장으로 유인하기 위한 일로 보고 있다. 원리금보장상품에 90% 이상 잠겨 있는 퇴직연금을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돌리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임원은 "개정안대로라면 자사 예금상품에만 돈을 넣지 못할 뿐 다른 은행에는 100% 넣을 수 있지만 어느 은행이 위험을 감수하고 고금리를 내걸어 자금을 따겠냐"며 "결국 각종 펀드ㆍ주식ㆍ채권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엇보다 브랜드가 되는 대형 금융회사들은 자금유치가 수월하겠지만 대부분의 중소형 금융회사는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은행들은 지난 4월부터 자산원리금보장상품의 운용 비율이 70%에서 50%로 낮아졌는데 6개월여 만에 다시 당국이 감독규정을 개정하는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