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경제부처의 한 고위당국자는 11일 2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한 직후 "역대 정권 가운데 현정권만큼 경기부양 대책을 많이 내놓은 곳은 없었을 것"이라며 "그런데 정작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고 여당에서는 부총리의 현실인식이 안이하다고 질타하니 할 말이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러면서 "이제는 짜내려고 해도 더 짜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제관료들은 요즘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업무가 과다해서도 아니고, 세종시 출퇴근으로 고단해서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이후 경기부양 대책의 일환으로 연이어 거시정책ㆍ미시정책을 쏟아냈지만 보람이 없고 여기에 청와대 등에서 채근하는 '속도의 압박'에 짓눌려 피로증후군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가 지난 3월 출범한 후 이제 갓 100일을 넘긴 상황에서 쏟아낸 경기대응책은 10여건에 달한다. 대책의 강도 또한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된다.
당국들이 이렇게 정책을 쏟아낸 데는 인사파동으로 박근혜 정부 출범이 늦어지면서 생긴 경기대응 타이밍을 만회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아울러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주요 각료들이 카리스마가 덜한 약체 경제팀이라는 초창기 평가를 의식해 강력한 정책 추진력을 입증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게 관가 안팎의 해석이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관료들조차 지쳐가고 있다. 특히 정책을 실무선에서 고안, 집행하는 하부 사무관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 중앙부처의 한 사무관은 "정말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 했고 한 과장급 간부는 "수많은 경제정책을 수립했지만 요즘처럼 힘이 빠진 때가 없었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저성장의 흐름이 길어지고 있는 만큼 경제관료들의 정책 만들기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숨고르기를 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그동안 발표한 정책들이 국회에서 채 처리되기도 전에 밀어내기식으로 새 정책을 발표하면 입법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법안들이 국회 문전에서 장기간 표류하는 '병목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리하게 속도를 내 정책을 만들다 보면 관계부처 간 이견이 표면화돼 정부 내 팀워크가 손상될 수도 있다
심지어 일부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지금 아이디어를 내놓아봤자 나중에 더 달라고 할 테니 차라리 서랍 속에 아껴두자"거나 "부처 간 합의가 안 된 대책이라도 먼저 터뜨려야 나중에 반대한 부처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는 식의 '요령부리기'도 목격된다.
이처럼 발표된 정책은 입법ㆍ시행이 지연되고 발표 예정인 정책들은 부처 간 갈등을 촉발하면서 국민과 기업인들이 체감하는 정책효과도 반감될 우려가 있다. 박 대통령이 나서 국민들이 정책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할 정도다.
이에 따라 정부가 이제는 정책마련의 완급을 조절하고 기존에 발표한 대책들이라도 빨리 입법화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마무리하는 게 시급하다고 경제전문가들은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