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미래세대의 보복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권력은 누구일까.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국은퇴자협회(AARP) 사무총장이다. 미국의 금융ㆍ언론 등을 손아귀에 쥐고 미국 정치를 주무르는 유대인 로비단체 '미국ㆍ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보다 더 막강한 힘을 자랑한다. 유럽ㆍ일본 등 다른 주요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실버 파워는 투표 참가율도 높기 때문에 정치권으로서는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당수 국가의 예산 배분도 이들 구세대에 맞춰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공공 예산 가운데 24%가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연금 형식으로 쓰일 정도다. 얼마 전 국가 부도 위기를 맞은 그리스도 과거 퍼주기식 복지 정책을 폈다지만 청년층은 여전히 월급 1,000유로의 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를 테면 정부의 주요 의사 결정이 세금을 내는 납세자가 아니라 유권자, 그 중에서도 정치적으로 힘이 센 연금 수급자에 맞춰진 셈이다.

거세지는 지구촌 연금 개혁 바람

최근 지구촌 차원의 재정 위기가 불거지면서 연금 개혁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산층ㆍ정규직 중심의 기존 세대가 일할 때 낸 돈보다 몇 배를 연금으로 가져가니 국가 재정이 거덜나지 않을 리 있겠는가. 일각에서는 현행 연금 제도를 새로운 투자자(미래 세대)에게 돈을 걷고 기존 투자자(기존 세대)에 이자를 지급하는 '폰지 사기(Ponzi Scheme)'에 비유할 정도다. 대다수 국가의 복지 예산 가운데 저소득층 공공부조 등의 예산은 연금 지원액에 비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여러 국가들은 노령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연금 개혁에 나서고 있다. 재정 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캐나다 정부마저 최근 퇴직연금 수급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67세로 단계적으로 올리기로 했다.

영국 역시 지난해 연금 수급 연령을 기종의 65세에서 오는 2024년까지 66세로 올린 데 이어 지난달에는 연금 수급자의 세금면제 혜택을 폐지하기로 했다. 프랑스도 지난해 연금 수급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늦추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고령자의 천국이라는 일본에서도 연금 지급 연령의 상향 조정이 논의되는 등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이탈리아ㆍ그리스 등 재정위기 국가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 총선ㆍ대선을 앞두고 중구난방으로 복지 정책이 쏟아지면서 포퓰리즘 논쟁이 한창이다.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생각도 든다. 진짜 포퓰리즘 폭탄은 연금 제도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 보상급식이다 뭐다 시끄럽지만 올해 늘어난 복지 예산 가운데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에 대한 지출 증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미래는 더 암울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국민연금 등 복지 부담의 증가로 미래 세대는 현 세대보다 2.4배나 많은 재정 부담을 지게 된다.

반면 여야를 막론하고 연금 개혁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는 실정이다. 노후 대책이라는 게 달랑 국민연금 하나뿐인 대다수 유권자들의 반발이 두려운 탓이다. 하지만 지금은 발언권조차 없는 미래 세대가 앞으로 유권자가 될 경우 '구세대의 빚을 내가 왜 갚느냐'며 집단으로 저항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개혁 등한시하면 세대갈등 불 보듯

이미 포르투갈, 스페인 등 이른바 피그스(PIGS) 국가들의 청년들은 높은 실업률에다 재정 적자의 책임마저 떠넘기는데 반발해 일자리를 찾아 독일, 브라질 등으로 이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경우 젊은 세대의 연금 납부율은 60%에 불과하다. 연금을 부어봤자 본전도 찾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도 세대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기 전에 연금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정치적 이해 관계나 국가 채무 증가 우려, 노후 대책, 세대 갈등 등을 운운하기에 앞서 기존 세대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 세대의 등골을 휘게 만든다는 것은 사회 정의의 문제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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