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화단의 거목 이인성의 체취

근현대 화단의 거목 이인성의 체취 호암갤러리서 작고50주기 기념전 "천하의 이인성을 모르느냐" 이 말이 빌미가 되어 이인성은 전쟁 와중인 1950년 한 순경과의 시비 끝에 총기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환쟁이 주제에 "라는 욕설과 함께. 불과 39세라는 아까운 나이였다. '한국 양화계의 거벽'이라 불리던 천재 작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귀재 이인성(1912~1950)의 작고 50주기를 맞아 그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회고전이 마련됐다. 17일부터 2001년 1월 25일까지 서울 호암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회고전에는 그의 대표작 '경주의 산곡에서'를 비롯해 '수채화첩'등 미공개작들이 대거 출품된다. 특히 '경주의 산곡'은 최근 미술평론가들이 선정한 '한국근대유화 베스트 10"에 김관호의 '해질녘'과 함께 공동 1위로 선정된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 이인성은 동시대 작가들인 이중섭(1916~1956), 박수근(1914~1965), 김환기(1913~1974) 등이 50~60년대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하기 시작하여 70~80년대 이후 세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과 달리, 일제 당시부터 '화단의 귀재'로 불리면서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사후에는 동시대 작가들에 비하면 오히려 관심권 밖에서 멀어졌던 작가.이는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평가가 많이 엇갈린 탓이 컸다. 이인성의 대표작 '경주의 산곡'의 경우 향토적인 색채감과 구도가 두드러지나 그의 작품 전반이 고갱, 세잔, 보나르 등 서구 인상파의 영향이 짙은데다, 활동 무대가 '조선미전'등 주로 관변 근처였기 때문이었다. 이인성은 일제 강점기에 대구의 어느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거의 독학으로 미술가의 길을 걸었다. '조선미전'에서 이인성이 두각을 나타내자 일부 후원자들의 도움을 얻어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가기도 했으나, 낮에는 일하고 밤에만 수업을 듣는 주경야독의 어려움도 겪었다. 아직은 미술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부족할 때, 오직 그림 하나로 세상 밖으로 나서겠다는 작가의 집념이 출세에 집착하는 인물로 보여질 수 도 있다. 사실 이인성의 작품은 고갱 등 서양화가들의 영향이 짙게 깔려 있고,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는 식민지 시대의 어려움 보다는 화사한 서구 전원풍의 느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작품을 남긴 인물화의 경우 한국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지고, 작가가 평생 향토적 색채감 발굴에 집착했다는 점에서 이인성에 대한 평가는 좀더 중층적이면서 심도 있게 진행되어야 할 과제라는 평가가 많다. 이준 삼성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이인성은 일제의 암흑기에도 '조선의 공기'와 '조선의 색채' 그리고 '조선의 정서'를 담아내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작가는 비록 일본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서구적인 화풍을 발전시켜 한국 근대화단에 있어서 향토적인 서정주의의 한 전형을 이루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이인성의 걸작들과 미공개작이 다수 포함된 사후 최대 규모의 전시로 수채화, 유화 80점이 정물, 인물, 풍경으로 나뉘어 1층에 전시되며, 드로잉, 삽화, 수묵화 등 15점과 이인성의 유품 및 자료전이 2층에 전시된다. 또 17일 오후 2시에 오광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의 강연이 삼성 본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리며 , 입장객을 위한 '갤러리 강좌'가 호암 갤러리 내 비디오실에서 12월 7일(최열), 12월 14일(이준), 1월 4일(박본수) 오후 5시에 개최된다. 문의 (02)771-2381. 이용웅기자 입력시간 2000/11/15 17:54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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