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불황 수렁' 빠져드나
국제유가 급등·뉴욕증시 폭락
미국 경기가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고유가, 유로화 약세 등이 겹치면서 불안에 떨고 있는 세계 경제에 중동제 대형 폭탄이 떨어졌다.
미군함 콜호가 정체불명의 테러집단으로부터 폭격을 당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중동 정세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사상 최악의 석유파동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자칫 유가상승 정도가 아니라 석유 수급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12일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는 397포인트, 3.6% 폭락하며 1년 6개월 전으로 되돌아갔고 경착륙 우려가 금융시장 전반을 휘감고 있다.
가뜩이나 불안한 아시아 상황은 더욱 심각해 타이완·필리핀 정부는 13일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자 각각 증시개입 및 금리 4%포인트 인상이라는 초강경 대책을 내놓는 등 경제위기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미국 경제 경착륙 우려확산=지난 몇년간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자산효과(wealth effect)」로 인한 경기과열을 우려하며 금리인상의 타깃 중 하나가 증시과열 진정이라고 강조했었다.
현재 미국 가계의 50% 이상이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지난 몇년간 주가상승으로 인해 가처분 소득이 충분하다는 여유심리 때문에 실제 소득 이상으로 소비를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경기가 과열되면서 다시 주가를 끌어올리는 연쇄반응을 일으켰다는 것이 자산효과 논리다.
이 때문에 그린스펀 의장은 금리인상을 통해 주가상승을 억제, 소비를 진정시킴으로써 경기성장 속도를 둔화시키는 연착륙(소프트랜딩)을 시도해왔다.
이제는 반대로 「역(逆)자산효과」가 거론되기 시작하고 있다. 주가 폭락으로 인해 미국 가계의 소비가 극도로 위축되면서 이로 인해 경기하강 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동사태로 인한 고유가라는 돌발변수가 통제불능의 상태로까지 치닫으면서 경착륙 가능성을 점점 높이고 있다.
웨스트팔리아증권의 수석투자전략가 피터 카디요는 『유가가 계속 오르게 되면 미국 경제가 경착륙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석유파동 재연 가능성=최근 중동사태는 지난 73년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 당시를 연상하게 한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73년 당시 아랍국가들은 원유수출을 금지하는 극단적 행동을 취해 석유파동을 일으켰다.
이번에도 원유 수출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AG에드워즈의 빌 오그래디는 『원유수출이 중단될 경우 유가는 배럴당 60달러선까지 폭등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당분간 유가가 40달러선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다시 벼랑으로 몰리고 있는 아시아 경제=가뜩이나 경제 체질이 허약한 아시아는 미 경제 경착륙 가능성 및 유가 급등으로 인해 다시 「국제통화기금(IMF) 악몽」에 휩싸이고 있다. IMF 위기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다.
동남아 각국에서는 이미 통화가치가 IMF 전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위기 조짐이 나타나고 있고 증시 상황도 당시의 패닉현상이 재연되고 있다.
여기에 고유가와 미 경제 경착륙 등이 겹칠 경우 제2의 위기 재연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 아시아 국가들의 우려다.
필리핀 페소화 가치는 계속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고, 타이 바트화 역시
투자자들의 투매가 이어지고 있다. 또 외국 투자자들은 이들 국가에서 자금을 빼 안전한 투자처로 돌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은 불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데 고유가와 미 경제 경착륙이라는 「기름」이 부어질 경우 아시아 경제는 일시에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뉴욕=이세정특파원 boblee@sed.co.k입력시간 2000/10/1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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