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것은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불황에 대비해왔다. 그러나 최근 검찰의 SK 수사 여진이 가라앉지를 않는데다 유가급등ㆍ내수 위축으로 경제가 어렵고 북핵ㆍ이라크전쟁 등의 불확실성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어 바짝 몸을 사리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은 당초 목표했던 투자 및 채용 계획을 하반기로 미루고 광고비 삭감, 경상비 축소 등 긴축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려 생긴 여유자금으로는 빚을 갚아 부채비율과 금융비용을 더욱 줄이는 등 비상시를 대비해 재무적인 `버퍼(충격완충장치)`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죽어나는 것은 중소기업이다. 대기업이 기침을 하면 중소기업은 독감에 걸리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투자심리= 대부분의 기업들은 공식적으로는 투자 축소 등 사업 계획을 조정할 단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올 2ㆍ4분기에는 재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삼성의 경우 올 1분기까지는 반도체ㆍLCD 등 대규모 투자는 계획대로 하지만 소규모ㆍ경상적투자는 시기와 상황을 봐가며 신축적으로 할 방침이다. 삼성 관계자는 “당초 1월에 시작해 2월에 끝날 것으로 예상했던 미ㆍ이라크 전쟁이 지연되고 있어 곤혹스럽다”며 “2ㆍ4분기에는 경영계획을 다시 짜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LG 관계자도 “일단 PDP 등 대규모 투자는 예정대로 진행하나 내수 침체 등의 경영 환경을 눈여겨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그룹도 내수침체나 유가 급등이 지속될 경우 공격적인 사업계획을 재조정하는 작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 검찰 수사의 직격탄을 맞은 SK 등은 신규 투자나 사업 확장은 꿈도 못꾸고 있다. SK는 지난해 KT 민영화에 참여하고 라이코스와 팍스넷, 세계물산을 인수하는 등 사업확장에 주력했으나 최태원 회장이 구속되면서 당분간 투자를 유보하고 있다. 한화 역시 경제 상황이 불투명한 만큼 향후 국내외 경제환경을 예의주시하면서 탄력있게 투자계획을 세운다는 방침이다. 한화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지속적인 구조조정 만이 위기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다”며 “ 대생 인수의 전제조건으로 거론된 경영 투명성과 재무 건전성 확보를 위해 한계 사업 철수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허리띠 더욱 졸라 맨다= 이에 따라 삼성ㆍLG 등 주요 대기업들은 원가절감, 경영혁신 활동을 지속하는 한편 인력채용도 하반기로 미루는 등 내실 경영을 가속화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매출 목표 달성을 위해 광고ㆍ선전비를 무작정 줄일 수는 없지만 경영환경이 워낙 좋지 않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LG전자 관계자도 “당장은 원가 절감, 업무혁신 등을 통해 제품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며 “중국 등으로 생산라인 이전을 통해 인건비를 줄이는데 힘쓸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도 원가절감 차원에서 재료비를 2~3% 가량 줄이고 인력도 가급적 현 수준을 유지해 나갈 방침이다. 특히 롯데ㆍ코오롱ㆍ효성 등 중견 그룹들은 판매관리비 삭감과 함께 상반기 채용을 하반기로 미루기로 했다.
◇재무전략도 비상체제= 지난해 1월 대기업의 은행대출은 2조4,800억원이나 늘어났다. 전년말에 부채비율 등 재무지표를 조정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줄인 대출금을 원상태로 회복시킨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한꺼번에 2조3,540억원의 대출을 줄였던 대기업들은 올 1월에 7,509억원을 늘리는 데 그쳤다. 지난 2월에는 대출잔액이 1조원 이상 줄었다. 투자를 기피하고 남는 돈으로 은행 빚부터 갚고 있는 것이다. 회사채 순상환액은 올들어 7,200억원이나 됐다.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째 순상환이 이어지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여신담당 임원은 “대기업들이 어려운 시기를 대비해 `재무적인 버퍼를 확보하자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대출 상환을 미뤄달라고 사정하러 다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최형욱기자 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