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을 맞아 백화점과 할인점에서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선물세트 판매가 크게 늘어나 내수회복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4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직원들이 빠른 배송을 위해 동원된 택시에 지역별로 분류된 선물세트를 싣고 있다. /이호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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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구입 크게 늘어 경기 좋아지려나 봐요"
본지 기자 설경기 르포
설을 맞아 백화점과 할인점에서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선물세트 판매가 크게 늘어나 내수회복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4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직원들이 빠른 배송을 위해 동원된 택시에 지역별로 분류된 선물세트를 싣고 있다. /이호재기자
입춘이자 설을 불과 3일 앞둔 4일 전국의 백화점ㆍ할인점ㆍ재래시장은 설 선물과 제수용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백화점에는 선물세트 구매문의가 잇따르고 재래시장에도 고객들의 발길이 늘어나는 등 꽁꽁 얼어붙었던 소비심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는 징후는 실물현장 곳곳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설선물주고받기운동에 힘입어 기업들의 선물용 수요는 다소 늘었지만 서민들이 지갑을 열기에는 아직 이른 듯했다.
대형 유통매장은 이번주 말 일반 소비자들의 수요에 기대를 걸고 있는 데 반해 서민이 주로 이용하는 재래시장은 설 특수를 전혀 체감할 수 없다는 반응이어서 내수회복의 불씨가 저변으로까지 온기를 퍼뜨리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느껴졌다.
”390만원어치 정육세트를 주문했습니다. 설 선물을 주고 받자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이번 설에는 거래처에 줄 선물을 좀 늘렸어요.”
4일 오후 롯데백화점 본점 정육판매 코너에서 만난 중소기업체 직원 이정호씨의 말이다. 이날 롯데 식품매장에는 전에 없이 넥타이를 맨 직장남성들이 대거 눈에 띄었다. 이들 중 일부는 한 손에 주소가 적힌 명단을 들고 배송주문에 여념이 없는가 하면 또 다른 몇몇은 직접 상품을 고르느라 판매직원과 분주히 대화를 나눴다.
배송의뢰서 작성을 맡고 있는 직원 10명은 고객 응대에 숨돌릴 틈도 없는 듯했다. 정육매장 직원은 “일부 지방은 이미 배송이 마무리됐고 지금 흥정하는 손님들은 대부분 서울ㆍ수도권 배송 고객”이라면서 “지난해보다 훨씬 바쁘다”고 말했다.
이날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의 청과 담당 판매원도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은 무농약 청과는 일부가 벌써 품절됐고 친환경세트 주문도 30% 이상 늘었다”면서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늘어난 분위기를 전했다.
기업체의 선물 및 상품권 수요는 확연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주요 백화점의 상품권판매 데스크는 수십 명이 차례를 기다리는 등 인파로 북적거렸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상품권판매처에는 대기자 번호가 25번까지 매겨져 있는가 하면 롯데백화점 지하 상품권판매처에도 수십 명이 줄을 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러나 백화점 매장 내에서도 단체주문 인기품목인 정육ㆍ청과 등의 매장은 직원들의 손길이 바쁜 반면 생활용품ㆍ잡화 등 다른 품목은 일반 소비자들이 별로 없어 한산했다. 직접 선물을 사가는 일반 소비자들이 이번주 말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매장에서는 아직 일반 소비자들의 활발한 소비가 뚜렷이 감지되지 않는다는 게 매장 직원들의 한결 같은 전언이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1층 양말매장 직원은 “생각보다 고객들이 별로 안 온다“며 “오늘부터 조금씩 나오는 추세인데 이번주 말을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양말을 고르던 주부 박현자(47ㆍ서울 잠원동)씨는 “경기가 좋아졌는지 아직 잘 모르겠고 이번 설에 특별히 선물을 더 늘리지도 않았다”면서 정말 경기가 나아졌느냐고 반문했다.
할인점은 각종 제기용품ㆍ설빔ㆍ선물세트 매장을 목 좋은 장소로 대거 옮기고 고객 상담을 받느라 분주했다.
롯데마트 영등포점을 방문한 한 40대 중소기업 사장은 “직원들 설 선물을 사려고 들렀지만 지난 추석보다 1인당 예산을 줄인 상태”라면서 “신용카드 규제가 완화된 뒤 대기업은 괜찮겠지만 중소기업은 자금회수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마트 은평점에서 만난 고객 이영숙씨는 “지난 추석 때는 여러 사람들에게 선물했지만 올해는 꼭 필요한 분들에게만 간소하게 드릴 생각”이라며 “차례 때 온 가족이 모이기는 하나 선물도, 음식준비 비용도 모두 줄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영등포점의 담당직원인 김민경씨는 “선물세트 구입고객의 90%가 명단을 들고 찾아온 기업 고객”이라며 “인근에 아파트단지가 잇달아 들어서며 전체 매출은 10~20% 늘었지만 일반인들의 선물 매출은 늘지 않아 아직 일반 고객에까지 파장이 미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본격적인 일반인들의 설 수요가 이번주 말에 집중되기 때문에 주말을 지나봐야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다는 분위기다. 도명기 이마트 일산점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출 회복세가 시작돼 지난해 12월에는 목표 매출의 120%를 달성했다”며 “이번주 말부터 집중되게 떱쳄?일반 고객 매출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물량을 늘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래시장은 여전히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대문시장 상점 주인들은 ‘원가판매’ ‘70% 세일’ 등의 안내판을 걸어놓고 목소리를 높여 손님들을 불렀지만 실제 흥정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1만~2만원짜리 ‘싸구려’ 겨울 옷을 사려는 사람들만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장사할 의지가 없는 듯 호객행위 자체를 포기한 상인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아동복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과거에는 설을 앞두고 아이들 설빔을 장만하려는 사람들이 남대문시장을 많이 찾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발길이 뚝 끊겼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반적으로 침체된 가운데서도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바로 액세서리 판매점. 최근 남대문시장의 액세서리가 저렴한 가격에 비해 품질은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남대문시장을 찾은 지방의 도매상과 해외 바이어들이 부쩍 늘었다.
바쁜 손놀림으로 액세서리를 만들고 있던 한 상인은 “요즘 남대문시장에서 장사가 되는 것은 이미테이션 액세서리류밖에 없을 듯하다”면서 주문내용을 빼곡히 적은 수첩을 내보였다. 수첩에는 ‘대구 아지메’ ‘부산 아저씨’라고 써놓은 지방 도매상들의 이름이 가득 들어차 있었고 일본ㆍ중국 등 해외 바이어들의 이름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노량진수산시장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제수용품 등을 구입하려는 고객들이 가끔 눈에 띄었지만 대목 명절이 목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시장은 한산하기만 했다. 지난해 설과 추석 명절의 경우 광우병과 조류독감 파동으로 수산물이 때아닌 특수를 누리며 비교적 짭짤한 재미를 봤던 반면 올해는 육류와 중저가 생활용품에 밀려 수산물을 찾는 고객이 크게 줄었다고 상인들은 입을 모았다.
시장 입구에서 손으로 만든 두부를 판매하는 한 상인은 낮에 잠깐 사람들이 몰렸다가 이내 고객의 발길이 끊길 정도로 설 대목을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동작상회를 운영하는 김현주 사장은 “전복과 대하ㆍ대게 등은 비교적 고가이기 때문에 선물세트로 구매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며 “언론에서 경기가 조금씩 풀린다고 하는데 시장 사람들은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그는 또 “횟집을 경영하는 대부분의 업주들은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비수기인 여름 장사와 비슷한 상황”이라며 “재고처리도 버거울 정도”라고 말했다.
/생활산업부
입력시간 : 2005-02-04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