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6월9일 저녁. 모처럼 휴식을 즐기던 민병도 당시 한국은행 총재는 돌연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호출을 받았다. 부랴부랴 최고회의실로 달려가 자리에 앉자마자 최고회의 재경 분과의 유원식 위원이 일어나 10환을 1원으로 하는 화폐개혁을 다음날인 10일 0시에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유는 지하자금 확보를 통한 재정 적자 해소와 경제개발 자금 발굴. 화폐개혁에 쓸 새 은행권도 영국에서 극비리에 제조돼 5월18일 국내에 도착해 있었다. 한은 총재도 모르는 대한민국 건국 후 세 번째 화폐개혁은 이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을 배제한 채 이뤄진 급작스러운 화폐개혁이 성공할 리 없었다. 오히려 구권 유통 금지로 혼란만 키워 국민들의 원성을 자초했다. 결국 화폐개혁은 유 위원과 송요찬 내각 수반, 천병규 재무부 장관 등 개혁을 주도한 3인방이 물러나고 7월13일 긴급조치를 통해 구권 유통을 허용하는 등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3차 화폐개혁 실패의 충격이 너무 컸던 것일까. 이후 53년간 우리나라에서는 화폐개혁이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1980년대 당시 경제기획원 중심으로 화폐개혁 움직임이 있었지만 인플레이션 우려에 막혀 뜻을 접어야 했고 2004년에는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가 "구체적 검토의 초기 단계에 와 있다"는 말까지 했지만 역시 실현에 옮기지 못했다. 하기야 역대 화폐개혁에 공(功)보다는 과(過)가 많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판이니 부담이 안 됐을 리 없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국정감사 중 화폐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물론 정부에서는 즉각 부정하고 나섰지만 그동안 나라 경제가 몰라보게 성장했고 물가도 그만큼 뛰었으니 검토할 시기가 된 것 아니냐는 속내는 숨기지 못하는 듯싶다. 과연 한은과 정부가 1962년의 실패 충격에서 벗어나 반세기 만에 다시 화폐개혁에 나설 수 있을지 아니면 과거처럼 그냥 스쳐 지나가는 해프닝에 그칠지 추이가 자못 궁금하다.
/송영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