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파란만장 자금성… 280년간의 영광과 비운

■ 자금성 이야기
이리에 요코 지음, 돌베개 펴냄


1967년 중국 베이징의 한 관광지. 허름한 차림의 한 노인이 '출입금지' 표지판을 지나 옥좌에 앉는다. 노인은 그곳에서 만난 소년에게 말한다. "나는 중국의 황제였단다. 여기 살았었지."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영화 '마지막 황제'의 한 장면. 당당히 옥좌에 앉은 노인은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傅儀)다. 그가 살았다던, 지금은 관광지가 된 옛집(?)은 영광과 비운의 역사가 공존하는 '자금성'이다.

이리에 요코의 '자금성 이야기'는 청나라 최초의 황제인 순치제 복림(福臨)이 즉위한 1644년부터 푸이가 성을 떠나기까지, 파란만장한 청대의 280년을 담아냈다.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고 자금성과 그 안의 여러 건축물이 역사의 화석처럼 자리 잡는 동안, 그 공간에선 여러 왕조가 흥망성쇠를 겪었고, 역시 많은 사람들이 삶과 죽음을 이어갔다. 책은 자금성 곳곳의 공간을 소개하며 그곳의 의미와 역사,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일종의 역사·고궁 가이드다.

마지막 황제에서 차갑고 삭막하며 광활한 마당을 걸어오는 세 살짜리 푸이의 모습은 대조적인 영상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어린 황제를 압도하던 그 공간은 바로 태화전(太和殿)이다. 왕조 통치의 기본이 되는 즉위식이나 칙령 반포 의식의 장소인 태화전은 기둥과 병풍, 천장에 자리 잡은 1만 3,844마리 금빛 용의 호위를 받는 황금의 전당이다. 한 사람의 인간인 황제를 하늘의 위탁을 받은 천자로서 무게감을 싣고 신비로운 존재로 추앙하기 위한 중국의 상상력과 기술이 이곳 태화전에 응결돼 있다.

저자는 청나라 1대 황제인 소년 순치제를 앞세워 숙부 도르곤이 처음 등장한 천안문부터 강희제·옹정제·건륭제와 서태후 시대를 거쳐 푸이의 퇴장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보화전, 교태전, 육경궁, 건청문 등 건축물과 그에 얽힌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자금성의 지도를 완성한다.

역사와 정치에만 치우치지 않고 지붕 처마를 장식한 문수(吻獸/길상 동물의 모형)의 개수가 건물의 격을 나타낸다는 건축 설계 속 이야기나 '진비 우물'이라는 명칭으로만 남아 있는 진비(광서제의 후궁)가 서태후의 미움을 사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내막 등 흥미로운 내용을 곁들여 재미를 더했다. 1만3,000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