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세상] 匠人은 아무 생각없이 일에만 몰두할까?

■ 장인 / 리처드 세넷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일하는 동안 결과물에 생각·감정 이입
인간의 능력·도구·기술등을 통합하는
'생각하는 손'에서 인간의 존엄성 찾아


일하는 인간을 지칭하는 두 가지 표현이 있다. 하나는 '아니말 라보란스(Animal Laborans)'. 굴레를 짊어진 짐승처럼 매일 고된 일을 되풀이해야 하는 인간, 그야말로 '일하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또 하나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 철학과 예술의 시대에 살았던 베르그송이 고안한 이 개념은 유ㆍ무형의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도구의 인간을 일컫는다. 아니말 라보란스는 노동에 앞서 '어떻게?'를 묻는다면 호모파베르는 제작에 앞서 '왜?'를 묻는다는 게 차이점이다.

2010년 스피노자상을 수상한 세계적 석학인 저자 세넷은 50여년 전 자신의 스승 한나 아렌트에게서 이같이 배웠다. 호모 파베르의 판단력이 인류를 문제적 상황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아렌트의 견해에 세넷은 문제를 제기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장인(匠人)의 이미지는 일 이외의 모든 것에 초연한 듯 오직 일 자체를 위해 몰입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스승은 노동 중의 인간은 의식이 없고 끝난 뒤에야 의식이 등장한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저자는 "과연 인간은 일하는 동안 아무 생각도 의식도 없는 것일까" 되묻는다. 저자는 "사람들은 자신이 만드는 물건을 통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울 수 있다"면서 "우리가 물건을 만드는 과정을 더 잘 알게 된다면 '호모 파베르'보다는 '아니말 라보란스'에게서 희망을 찾고 싶다"는 반론을 펼친다.

책은 인간 고유의 손 작업과 기능, 노동의 역사를 관통하며 '일'의 순수한 본질을 파고 든다. "일 자체를 위해서 일을 훌륭히 해내려는 욕망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고 보는 저자는 "인간의 생각과 감정이 일하는 과정 안에 갇혀있다고 보는 게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이라 전제한다.

저자는 일 자체에 대한 욕구를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한다. 손이 만들어내고 손과 머리가 합작으로 일궈내는 것들은 자체로 만족감을 주지만 비수가 돼 되돌아오기도 한다는 말이다. 기술의 발달과 문명은 바로 이런 판도라의 역설을 보여준다.

책의 핵심인 1부에서는 역사상 장인이 밟아온 길과 그들의 불평등한 관계, 기계에 대한 대항 등을 펼쳐 보인다. 상고시대의 그리스 도공, 로마제국의 벽돌공부터 거대한 성당을 지어올렸던 중세의 석공, 르네상스 예술가를 비롯해 근대의 노동자, 프로그래머나 건축가, 의사 등 현대의 전문 직종까지 훑어내린다. 현대적 장인으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에 참여하는 리눅스 프로그래머들이 하는 일이나 고대의 도공이 했던 작업은 별반 다르지 않다.

장인들의 손놀림을 따라 세넷이 찾아가는 것은 실종돼 가는 인간의 원초적 정체성이다. 기존 사상가들이 문명과 정신문화를 대립관계로 여겨온 것과 달리 저자는 인간의 능력과 도구, 기술을 통합하는 '생각하는 손'에서 인간의 존엄한 힘을 발견한다.

다시 말해 손과 머리는 하나이고, 행동하면서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 장인의 일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뛰어난 장인은 작업과 생각 사이를 오가면서 대화한다. 이런 장인 정신을 되살려 현대문명에서 장인과 예술가, 제작자와 사용자 등으로 구분해온 기존 이론을 떨쳐내고 '생각하는 손'을 되찾자고 주장한다.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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