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주력산업 활로를 찾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우려한 '철강 보호무역주의' 실태는

美, 근거도 없이 유정용 강관에 반덤핑 관세
의회압박에 무혐의 뒤집고 셰일특수 독식 노려
EU 등 선진국선 수입규제… 중국은 저가공세로 압박
한국 철강산업 '사면초가'


세계 철강시장이 공급 과잉으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선진국을 중심으로 반덤핑 관세 등 수입 규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월 캐나다를 시작으로 미국 상무부에 이어 최근에는 유럽연합(EU)까지 관세장벽을 치고 있다. 특히 미국 철강업계가 문제 삼은 유정용 강관처럼 국내에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는데도 반덤핑관세 부과를 결정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주 미국 페니 프리츠커 상무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미국의 철강 보호무역주의 회귀를 우려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26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0월 말 현재 16개 국가가 국내 철강제품 59건에 대한 반덤핑 및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했거나 진행 중이다. 이들 가운데 8월 미 상무부의 반덤핑 조치는 셰일가스 혁명으로 유정용 강관 가격이 상승하자 해외 업체에 철강 특수를 넘겨주기 않기 위한 '아메리칸 퍼스트(미국제품 우선 구매)'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유정용 강관은 주로 셰일가스 시추 등에 쓰이는 강관으로 올해 북미 지역에서 15% 정도 수요가 늘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미국이 반덤핑 과세 부과 결정 과정을 보면 더욱 석연찮다. 국내에 유정용 강관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은 점이 미국의 반덤핑 논리의 결정적 근거가 됐다. 통상 덤핑에 대한 판단은 생산 국가 판매 가격이 수출 가격과의 차이가 얼마나 나느냐가 1차 관건이다. 하지만 유정용 강관은 국내에 시장이 없는 탓에 미국은 한국산에 대해 인위적으로 '우선 가격'을 만들어 이를 적용했다. 1년 전 예비 판정 때 무혐의였다가 본 판정 때 반덤핑 관세율이 최고 15.75%까지 나온 것은 미국 내 통용되는 강관의 마진율 26%를 한국산 강관에 적용해 한국 내 가격을 정했다는 이야기다. 결국 있지도 않은 한국 내 시장 가격이 올라감에 따라 미국으로의 수출 가격이 상대적으로 크게 낮아져 엄청난 덤핑 마진을 본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특히 판정 결과 번복은 미 전체 상원의원의 절반이 넘는 56명이 오바마 행정부에 무혐의 예비판정을 재고하라고 압력을 행사한 것이 결정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미 정부에 제소한 US스틸은 유리한 결정을 받기 위해 자국 내 유정용 강관 생산공장 2곳을 고의로 가동 중단해 국제적으로 물의를 빚은 바도 있다. 미국 내 일자리 감소를 엉뚱하게도 우리 기업에 화살을 돌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저가 중국산 철강제품이 세계 시장을 흔드는 마당이어서 선진국의 반덤핑 제소로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지고 있다. 중국산 철강재가 들어오면 국내 시장도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윤관철 BS투자증권 철강 부문 연구원은 "가장 큰 해법은 세계경제가 성장해 조선과 자동차·건설이 회복해 시장이 회복하는 것"이라며 "기업들 자체적으로 고부가제품을 개발하거나 원가를 낮추는 등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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