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석 그린' 경험부족 탓

하나은행챔피언십 명승부 속 아쉬움


‘절친’ 최나연(23ㆍSK텔레콤)과 김송희(22ㆍ하이트), 그리고 어머니가 한국인인 비키 허스트(20ㆍ미국)의 박진감 넘치는 3파전. 사흘 동안 총 3만명에 달한 구름 갤러리…. 지난 10월31일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하나은행챔피언십은 국내 팬들에게 안방에서 ‘골프 한류’를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선사했다. 최고의 코스 컨디션과 정상급 선수들의 기량 등 9회째를 맞은 대회는 내용과 흥행에서 빅 이벤트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국내파 선수들의 예상 밖 부진과 성숙되지 못한 갤러리 문화에 대한 해묵은 지적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국내파 홈에서 침묵, 왜?=하나은행챔피언십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미국 LPGA 투어 대회다. 그동안 국내 선수들에게는 ‘기회의 무대’가 돼왔다. 익숙한 홈코스에서 우승하면 고통스러운 퀄리파잉(Q)스쿨이나 미국 2부 투어를 생략하고 LPGA 직행 티켓을 따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안시현ㆍ홍진주ㆍ이지영 등이 이런 특전을 누렸다. 올해 대회에서 국내파들이 받은 성적표는 초라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소속 선수들은 프로 출전자 73명 중 3분의1에 가까운 17명이 나섰지만 단 한 명도 ‘톱10’에 들지 못했다. 유소연(20ㆍ하이마트)이 우승자 최나연에게 7타나 뒤진 공동 12위로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고 KLPGA 상금 상위 랭커들이 하위권에 밀려 팬들의 기대에 못 미쳤다. 단단하고 빠른 그린에 대한 적응이 가장 큰 원인이 됐다. LPGA 투어 측은 대회장인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장 오션코스의 그린에 일주일 이상 물을 뿌리지 말 것과 스팀프미터(그린의 빠르기를 측정하는 막대) 3.3m의 빠른 스피드를 유지할 것을 주문했다. 단단하고 빠른 ‘대리석 그린’에 경험이 부족한 국내 선수들에게는 완전히 다른 골프코스가 됐다. 많은 선수들이 평소처럼 핀을 직접 공략했다 그린을 넘겨 타수를 잃기 일쑤였다. 오는 2016년 골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됨에 따라 장기적으로 ‘국제 표준’에 맞춘 코스 세팅 필요성이 대두되는 대목이다. 국내 대회 수가 늘고 미국 LPGA 투어의 사정이 악화되면서 미국 진출에 대한 동기부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 ◇후진 갤러리 문화, 언제까지?=팽팽한 승부가 펼쳐지던 최종라운드. 88번째 출전 대회에서 첫 승의 꿈을 키워가던 김송희는 여러 차례 준비자세를 풀어야 했다. 카메라와 휴대폰으로 연신 눌러대는 관람객들의 셔터 소리 때문이었다. 휴대폰 벨 소리도 자주 들려왔으며 플레이 도중인데도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은 거의 모든 홀에서 눈에 띄었다. 캐디들은 선수를 대신해 갤러리를 통제하느라 바빴다. 대다수 갤러리의 관람 수준이 높아졌지만 유명 선수들의 출전으로 많은 갤러리가 모이는 대회에서는 되풀이되는 것이 현실이다. “나도 갔다”는 ‘인증 샷 찍기’ 풍토,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잊은 이기적인 행동 등은 높아지는 한국 골프 위상에 맞춰 자제해야 할 부분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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