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회고록 들여다보니] "일본 처음엔 통화스와프 냉담… 한중 체결하자 서둘러 입장바꿔"

2009년 금융위기 극복과정 폐에 병 생겼지만 보안 신경
동계올림픽 유치 고생한 이건희 회장에 측은한 마음도
자원개발 사업 투명성·회수율 노무현 정부때보다 높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통해 재임 당시의 많은 비화들을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측근들과의 송년 만찬에 참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왼쪽은 이재오 의원. /=연합뉴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29일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사진)'에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통화스와프 체결 비화와 함께 경제위기를 극복한 뒤 국가 신용등급이 선진국 수준으로 오른 것 등을 소상하게 전했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대미 무역흑자가 큰 폭으로 증가해 한미 FTA가 성공적이라는 평가도 내놓았다. 아울러 이건희 삼성 회장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마음 고생한 것에 대해 측은해하는 마음도 회고록에 세세하게 기록했다.

통화스와프 거절한 일본

이 전 대통령은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외화 유동성 경색을 완화하며 금융위기의 충격이 실물 부분으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는 데 기여했다고 기억했다. 아울러 일본 및 중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교두보로도 작용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통화스와프란 약정된 환율에 따라 자국의 통화를 맡겨놓고 상대국의 통화를 빌려오는 외환거래를 의미한다. 이 전 대통령은 "한국은행 관계자는 미 연준으로부터 '통화스와프가 뭔지나 아느냐'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며 "당시 미국은 유럽연합이나 일본·영국·스위스·캐나다 등 신용등급 AAA 수준의 선진국만을 대상으로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과 300억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뒤 일본으로 달려갔지만 일본은 냉담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이 전 대통령은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는 특히 일본이 100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인출해간 것이 결정타였다. 1997년처럼 협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일본 실무자의 발언은 당시 상황을 상기시켰다"면서 "(중국과 300억달러 규모의 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일본 정부가 알게 됐고 일본도 입장을 바꿔 한국과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은 한술 더 떠 일본과의 통화스와프를 중국과 체결한 것보다 먼저 발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금융위기 거치며 폐에 문제

이 전 대통령은 미국발 금융위기를 극복한 뒤 국가신용등급이 선진국 수준으로 오른 것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박재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의 통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세계 금융위기가 발발하기 이전인 2007년에는 A등급 이상인 나라가 47개나 됐지만 2012년에는 그 반 토막 수준인 23개로 줄었다"며 "그런 가운데 무디스는 이례적으로 한국의 신용등급을 A1에서 AA3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우리 역사상 가장 높은 신용등급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전 대통령은 특히 "세계 금융위기가 시작될 때만 해도 국내외 언론들은 입을 모아 한국이 국가 부도에 처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며 "그러나 정신 없이 뛰는 사이 한국은 세계 금융위기를 모범적으로 극복하고 신용등급도 일본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2009년 12월께 극도의 피로감으로 주치의에게 검진을 받은 결과 폐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았지만 나라가 어려운 때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하고 당시 영부인이 쓰던 화장품으로 메이크업을 하는 등 자신의 증세가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보안을 유지한 사실도 털어놓았다. 이 전 대통령의 병도 우리나라가 금융위기에서 벗어날 즈음 완치됐다고 그는 회고록에서 서술했다.

노무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합의

그는 쇠고기 협상 등 막판 추가 협상 과정에서 자동차를 양보하는 대신 30개월령 이상 쇠고기의 수입을 막은 기억을 더듬었다. 이후 한미 FTA가 성공적이었던 점을 자부했다. 그는 "무엇보다 한미 FTA 발효 후 대미 무역흑자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은 협상이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한다"며 "2011년 107억달러였던 대미 무역흑자는 FTA 발효 첫해인 2012년에는 152억달러, 2013년에는 206억달러로 크게 늘었다"고 강조했다. 이 전 대통령은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김종훈 당시 통상교섭본부장과의 통화 내용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시와 통화하면서 월령 제한 없이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겠다는 합의를 했다는 내용도 전했다. 그는 당시 김 본부장이 "노 대통령이 부시와 통화하면서 이면 합의를 했습니다. 그걸로 담화까지 발표했습니다. 2007년 APEC을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또 한 번 구두로 합의했습니다. 특정위험 부위를 제외하고는 월령 제한 없이 전부 수입하겠다는 내용이라고 합니다"라고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이건희 회장 '원포인트 사면' 고민

이 전 대통령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것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의 눈물을 회상했다. 그는 "좀처럼 감정을 내비치지 않던 이 회장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보였다"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모든 공을 주위로 돌리는 이 회장을 보면서 나는 원포인트 사면으로 그가 그동안 평창 유치에 얼마나 큰 부담을 느끼고 마음고생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앞서 이 전 대통령은 이 회장의 평창 유치 활동 지원을 위해 사면복권이 필요하다는 탄원서와 정치적 리스크 간의 고민도 드러냈다. 그는 "나 역시 평창 유치를 위해 이 회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과거 정부와 외국의 전례도 있고 국민의 지지도 있다면 정면돌파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며 "그리고 야권의 공세로 인한 정치적 타격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이 회장만을 사면한 원포인트 사면의 배경을 전했다.

盧정부 자원외교 에이전트 수의계약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 시작된 자원개발의 투명성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공기업의 해외 사업에 에이전트를 고용할 경우 '수의계약'으로 하도록 해 투명성에 문제가 생긴 반면 내가 재임할 때는 가급적 자문료나 커미션 없는 사업을 추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어 "컨설팅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는 공신력 있는 대형 자문회사를 활용해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고자 노력했다"며 야당의 공세를 의식했다. 이 전 대통령은 특히 자신의 재임 시절 자원개발 사업의 투자 대비 총회수율은 114.8%로 노무현 정부의 총회수율인 102.7%보다 높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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