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권이 몸을 던져 대우 살리기에 나섰다.투신권은 26일 긴급 사장단 간담회를 갖고 대우그룹이 발행한 CP(기업어음)와 회사채중 만기도래분에 대한 재연장 착수는 물론, 대우그룹에 대한 신규지원금액 4조원중 투신권에 할당된 2조6,000억원을 조속히 지원키로 했다.
이에따라 한국투신은 이날 대우그룹의 CP를 인수하는 방법으로 총 3,007억원을 지원했다. 또 대한투신과 현대투신도 각각 1,445억원, 2,961억원을 지원했다. 이들 투신사들은 인수한 CP를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한 펀드에 분산 편입시켜 부실채권 편입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물론 일부 투신사에서 투신권에 할당된 신규지원금액의 규모가 너무 과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고, 기존투신사와 달리 별다른 자금조달 수단이 없는 후발투신사의 불만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투신권의 최대 위기상황이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승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는 상태다.
투신이 이처럼 대우그룹 지원에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대우쇼크가 이번 금융위기의 진원지고, 일단 뇌사상태에 빠진 대우그룹의 숨통을 틔어 놔야 투신의 타격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상황인식에 따른 것이다.
스스로 살기위해서는 우선 내몸을 희생해서라도 대우그룹을 살려놓아야 한다는 인식이다.
대우그룹의 70개 채권금융기관중 24개 투신사가 갖고 있는 대우그룹 발행 CP와 회사채는 지난 16일 현재 21조9,000억원에 달한다. 채권단 전체 보유물량의 77%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이에따라 일부에서는 투신이 대우그룹과 한배를 탔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환매사태는 투신권의 최대 아킬레스 건이다. 최근의 금융위기는 대우그룹의 자체적인 문제외에 투신의 과다한 대우그룹 채권보유 및 대우그룹 신규지원에 따른 자금마련이 채권시장 수급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시장의 판단에서 촉발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해 환매사태를 진정시키지 않으면 투신에서 돈 빼내가기는 러시를 이룰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투신권이 이날 긴급 사장단 간담회를 갖고 대우그룹에 대한 지원의지를 다지는 한편, 23일의 주가폭락에도 불구하고 환매규모는 미미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결국은 투자자의 불안심리를 서둘러 봉합하자는 취지가 강하다.
그러나 이같은 투신권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대우쇼크와 환매사태의 일차적 해법은 정부와 대우그룹 자신이 쥐고 있다는 게 투신업계의 한결같은 시각이다.
정부는 최근 출자전환 및 소그룹 중심의 분리·매각을 통해 대우그룹 구조조정을 최대한 빨리 매듭짓고, 동시에 국채 및 통화안정증권의 무제한 매입을 통해 환매사태를 막는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아직도 시장은「신뢰 사인」을 보내지 않고 있다.
투신권 역시「자기만 살겠다고 나서면 모두가 죽는다」며 내부결속을 다지고 있지만 만일 기존펀드의 수익률을 고정시키려는 매도헤지, 이에따른 선물의 저평가및 매도차익거래 발생, 현물의 동반하락 현상이 빚어지면 사태는 겉잡을 수 없는 형국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게 관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반면 어느때나 그렇듯이 위기가 기회일 수 있다는 낙관적 견해도 많이 나오고 있다. 즉 대우그룹 문제는 외환금융위기 해소과정에서 결국은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이었던 만큼 이 관문만 잘 통과하면 우리시장의 리스크는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며, 이는 그만큼 탄력이 붙은 주가상승을 유도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증권사 사장단도 이날 증권협회에서 회의를 갖고 정부가 발표한 금융시장 안정대책에 적극 호응키로 했다. 증권업계는 저금리정책의 일관성있는 유지와 함께 일부에서 논의중인 금융소득종합과세 재실시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후로 연기해 줄 것을 촉구해 증시주변 개인투자자들의 여건조성에 상당히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정구영 기자 GYCH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