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 홀!] 충북 충주 동촌GC 서코스 9번홀

국망산 병풍 둘러친 난공불락 S라인
해저드·벙커 넘겨야 페어웨이 그린 안보이게 설계 OB 유발
프로들도 파 세이브에 급급
코스내 '동촌 삼경' 꼭봐야



골퍼는 홀을 어떻게 정복할지를 고민하겠지만 설계자는 무엇으로 골퍼의 기량을 분별할지를 먼저 고민한다.

지난 19일 충북 충주 동촌GC의 서코스 9번홀(파5ㆍ541야드)은 골퍼와 설계자의 지략 싸움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제56회 한국프로골프(KPGA) 선수권대회 최종일 경기 얘기다. 반전을 거듭하던 우승경쟁 드라마의 결말은 이 웅장한 마지막 홀(대회 당시 18번홀)에서 드러났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이 홀은 잘 빠진 8등신 미인의 S라인을 그리며 점진적인 오르막으로 산을 향하고 있다. 페어웨이 좌우에는 흰색의 자작나무로 치장까지 제대로 했다. 그런데 이 미인, 정신을 홀리는 워터해저드와 가시 같은 벙커를 품었다.

티샷은 해저드와 페어웨이 왼쪽에 포진한 4개의 대형 벙커를 넘겨야 한다. 눈부시게 새하얀 벙커는 실제보다 가깝게 보여 욕심을 부채질한다. 한 뼘이라도 더 그린에 가깝게 보내려 왼쪽을 겨냥하고 싶어진다. 10도 정도만 왼쪽을 노려도 페어웨이 안착에 30m의 비거리가 더 필요했다는 사실은 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이 홀이 까다로운 또 하나의 이유는 두 번째 샷 지점에서 그린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페어웨이가 끝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오른쪽에서 뻗어 나온 능선 끝자락이 미인의 얼굴을 절묘하게 가리고 있다. 이 숲은 OB(아웃오브바운즈) 구역이다.

KPGA 선수권 최종일. 마지막 홀을 맞은 챔피언 조의 성적은 김형태가 합계 18언더로 선두, 이상희와 김대섭이 1타 차 공동 2위였다. 김대현은 설계자의 의도에 톡톡히 당한 뒤 쓴웃음을 지었다. 티샷을 왼쪽 벙커 옆 러프로 보낸 그는 가파른 경사지에서 1타를 허비했고 3타째는 그린을 엄호하는 숲으로 OB를 내 한꺼번에 3타를 잃고 말았다. 김형태는 보기를 적어내 이상희에 동타를 허용했지만 같은 홀에서 펼친 연장전 땐 천금의 버디를 낚아 우승했다. 두 번째 샷을 그린보다 왼쪽으로 보내며 이 홀 공략의 정답을 보여줬다.

이 홀은 해저드와 벙커, 국망산(國望山)을 배경으로 한 경관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져 있다. 여기에 샷의 가치를 명확히 분별하는 엄정함이 녹아 있는 난공불락의 성이다. 이번 대회 최종일 평균스코어는 4.95타였다. 골프장 관계자는 "파5홀을 '버디 홀'로 여기는 프로선수들도 여기에선 파 세이브에 급급했던 셈"이라며 "아마추어들은 보기를 해도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곳 동촌GC는 경기 광주의 명문 골프장 남촌CC의 동생이다. 지난해 10월 문을 열어 올해의 고약한 날씨를 넘긴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관리 상태가 좋다. 페어웨이에는 중지(들잔디), 티잉그라운드와 러프에는 켄터키블루가 식재됐고 그린 잔디는 벤트 그래스다.

다양한 이야깃거리는 라운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코스의 근간을 이루는 국망산은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피난 내려와 한양을 바라보며 나라를 걱정했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국망산 건너편 노은면 가신리에는 당시 황후의 초가 터에 자취를 기리는 유허비가 있다.

코스 내에는 꼭 봐야 할 동촌 삼경(三景)이 있다. 서코스 1번홀 티잉그라운드 옆 '연지암'은 주민들이 예로부터 신선바위라 부르며 소원과 안녕을 빌었던 곳이라 한다. 동코스 4번홀 그린 왼쪽에 있는 거대한 '흑경암'은 검은 고래의 모습을 했고 동코스 5번홀 옆 '삼선암'은 세 갈래 폭포가 흘러내려 한 폭의 산수화 같다.

동촌GC는 오는 2017년까지 5년간 KPGA 선수권대회를 개최한다. 이용객들은 명승부를 떠올리고 또 기다리면서 저마다의 드라마를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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