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에서 相生으로

2004년 갑신(甲申)년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면서 품게 되는 가장 큰 소망은 우리 모두 함께할 수 있는 상생(相生)이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얼룩지게 한 가장 무거운 짐이 갈등의 폭발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연초 노사갈등으로 시작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새만금 개발, 부안 핵폐기장,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이르기까지 `갈등의 전성시대`를 방불케 했다. 돌아보면 갈등의 전성시대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산업화 시대에 뒤이어 지난 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렸음에도 `3김 정치`로 상징되는 귄위주의적 민주주의가 지속되면서 갈등은 억제돼왔다. 더욱이 97년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국가부도 사태는 갈등의 폭발을 지연시켜왔다. 이 와중에 참여민주주의를 표방한 참여정부의 등장은 갈등이 일거에 분출하는 데 계기를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갈등이라 해서 물론 부정적인 것만으로 볼 필요는 없다. 어느 사회이건 집단간 이익의 차이가 존재하며 이런 차이는 갈등과 충돌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갈등의 존재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민주적으로 조정하느냐가 중요한 법이다. 그것이 민주적으로 조정될 수 있다면 갈등은 오히려 질 높은 사회통합과 유연성을 가져다주는 사회과정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한해 분출했던 일련의 갈등들은 한 사회가 자연스레 치러야 할 갈등비용을 적잖이 초과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극단적인 힘겨루기로 치닫는 경향이 두드러진 것이 우리 사회의 자화상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갈등을 생산적인 사회동력으로 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다음의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21세기의 새로운 민주주의 원리로서 이른바 공치(共治ㆍgovernance) 모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정부ㆍ기업ㆍ시민사회를 포함해 어떤 집합행위자라 하더라도 이제는 의사결정 과정을 독점할 수 없다. 주요 사안의 최종결정권자가 국민들로부터 공적 권위를 위임받은 정부와 국회라 하더라도 다양한 집합행위자들이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공치 모델은 유연성과 사회통합을 제고함으로써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킨다. 주목할 것은 과거 권위주의 모델로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사회는 역사적으로 없었다는 사실이며 바로 이 점에서 공치 모델은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 오늘날 경제적 효율성과 민주적 의사결정은 상호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서로에게 중요한 파트너다. 더욱이 이 공치 모델은 가속화되는 수평적인 정보사회의 도래에도 걸맞는 의사결정 모델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극단적인 갈등의 주요 원인의 하나인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처방도 중요하다. 집단이기주의는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고수하는 `비도덕적 가족주의`의 확대 버전으로 민주적 합의를 이루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른바 똘레랑스(tolerance), 즉 관용의 정신이 요청되는 것도 바로 여기다. 관용이란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생각이더라도 용인하는 것을 뜻하며 무엇보다 민주적 합의 형성에 기본조건인 대화와 타협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똘레랑스라 해서 물론 모든 것을 관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닐 뿐더러 관용과 불관용의 경계를 나누기가 쉬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 관용의 정신은 지난해의 경험이 보여주듯 매우 취약한 것이 사실이며 따라서 관용의 정신을 제고할 수 있는 제도적ㆍ의식적 혁신이 요청되고 있다. 길게 보면 갈등의 전성시대도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한 시험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시험을 위한 시간이 그렇게 많이 허용돼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통과의례라면 가능한 단시간 내에 얻을 수 있는 교훈을 극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파괴적인 갈등이 아니라 생산적인 갈등, 뺄셈의 갈등구조가 아니라 덧셈의 갈등구조를 성취하는 것이 선진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새해에는 갈등의 전성시대를 넘어 상생의 전성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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