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바람난 가족

“각자 아버지는 각자가 좀 알아서 하자”(시아버지를 모셔오라는 남편의 부탁에 아내가). “엄마, 오늘 아빠 야근한대. 거짓말 같지는 않아.”(아빠의 전화를 받은 어린 아들이 엄마에게). “너만 모르면 불공평하잖니.”(입양아임을 왜 벌써 알려줬냐는 어린 아들에게 엄마가). “제사는 산사람 몫인데 자기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화장하라는 시아버지의 당부에 시어머니가) “그 X랑 나랑 원래 이래요.”(찾아온 아버지를 지칭하며 십대 소년이). 영화 `바람난 가족`의 가족들은 하나 같이 `바람 나` 있다. 모든 등장인물이 바람난 한국 영화는 일찍이 처음. 감정적인 유대관계가 끊긴 부부 주영작(황정민 분)과 은호정(문소리)은 10여년 째 불임이다. 애인과의 관계에서는 둘 다 아이가 생기건만 두 사람 사이에서는 어불성설이다. 오래 앓은 가부장적인 남편(김인문 분)에게 질린 시어머니(윤여정 분)는 남편의 상이 끝난 자리에서 `애인`과 `섹스`를 언급한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은 비단 성적 결정권에 그치지 않는다. 가족 모두는 가정 내에서 `정해져 있다는` 역할로부터도 벗어나 있다. 정사신이 없는 시아버지 조차 친부에 대한 공양의무나 `아버지스런` 품격 유지에 있어서는 영락없이 기존 약속을 배반한다. 결국 이들의 바람은 가족이라는 제도와 권리와 의무에 대한 총천연색 반란인 셈이다. 영화는 왜 이들이 바람이 났는가에 집착하지 않는 것처럼 피해자와 죄인을 나누는 제도적 단죄도 시도하지 않는다. 성적 코드에서 그러하듯 `달라진 가족`들이 만드는 균열을 보는 시선도 역시 그렇다. 결국 영화가 벗기고자 하는 위선은 `제도`안에 있다는 안전장치 외에 어떤 기능도 주지 못하게 된 현대 가정의 쓸쓸한 오늘인지도 모른다. 시종일관 담담한 시선을 유지한 대사는 한땀 한땀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임상수 감독, 15일 개봉. <우승호기자 derrida@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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