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는 만큼 원유 생산량을 줄이겠다`
국제 석유카르텔인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산유량을 달러화 가치와 연계해 감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원유 결제 통화인 달러화 하락분을 원유가 인상으로 메꿔보겠다는 의도다. 4일 빈에서 열리는 OPEC 각료회의 참석차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은 3일 달러화 하락에 따른 회원국 구매력 감소에 대응, 수주 내에 감산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OPEC을 주도하고 있는 사우디가 달러화와 유가를 상호 연계 시킨 발언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향후 국제 석유시장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 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00년 이래 국제에너지기구 등 국제사회와 OPEC은 기준 유가를 배럴당 22~28달러 범위내에서 유지키로 합의했는데 이번 사우디 정부의 발언으로 국제 유가가 대폭 인상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사우디 석유장관의 이번 언급은 국제유가가 연일 이어진 고공행진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현재 OPEC 기준 유가는 이미 현재 목표가격대를 뛰어넘는 28달러대를 기록하고 있지만 올들어 달러화 가치가 유로화에 대해 15% 가량 떨어졌기 때문에 실제로 OPEC이 손해를 봤다는 게 사우디 등 상당수 OPEC 회원국의 판단이다.
알나이미 장관은 “현재의 유가는 높지 않다”며 “달러화의 실질가치를 보면 (국제유가는) 배럴당 약 25달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내년 2ㆍ4분기 동향에 대해 벌써부터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번 각료회의나 내년 3월 회의에 앞선 임시회동에서 사전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 조만간 목표가격대의 상향조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베네수엘라 등 일부 OPEC회원국이 목표가격대를 배럴당 25∼32달러까지 끌어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OPEC이 당장 유가를 올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국제석유시장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유가 급등에 따른 세계경제 타격 등으로 미국 등 주요 원유 수입국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데다 알제리 리비아 인도네시아 등 일부 OPEC 회원국은 현재 감산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섣부른 유가 인상 조치로 주요 수입국이 차제에 점점 커지고 있는 러시아 시장 등으로 원유 도입선을 옮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사우디장관의 목표가격대 상향 시사 발언은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내년 2ㆍ4분기 계절적으로 원유 비수기에 대비해 유가 인상이 필요하다는 일부 OPEC 회원국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병관기자 comeo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