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원자력, 산업이 아닌 국가미래다


박근혜 정부의 조직개편안 가운데 원자력 관련 업무의 관할변경에 대해 과학기술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독립기관이던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미래창조과학부' 산하로 이관하고 원자력 연구개발(R&D)을 과학기술 전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가 아닌 산업이용을 관장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담당하도록 한 방침 때문이다.

원자력 행정조직을 산업통상자원부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첫번째 논거는 규제의 독립성이다.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로 오게 됐으니 원자력 진흥업무를 같은 부처에서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규제의 독립성은 지켜지는 게 맞다. 그러나 원자력 연구개발까지 산업 분야에서 하게 되면 규제의 독립성이 지켜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규제위축을 초래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원자력은 '규제-진흥(정책수립과 연구개발)-산업이용(원자력 발전)'의 세 분야가 상호견제를 통해 경제적·기술적 균형을 이뤄왔다. 특히 연구개발은 규제와 규제의 직접적 대상이 되는 산업이용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양쪽에 기술ㆍ지식 기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 세 분야 중 진흥과 산업이 한배를 타면 규제는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왜소해지고 만다. 규제의 독립이 바람직하지만 독립을 위한 독립이 아니라 규제가 실효를 거둘 수 있어야 하는데 진흥업무의 산업부처 이관은 그런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정부조직 개편안을 논의하는 국회가 이런 문제들을 헤아려 여야가 원자력안전위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다니 늦기 전에 올바른 길을 찾아 다행이다. 원자력안전위 기관 자체의 형식적인 독립뿐만 아니라 실질적 독립을 위해 연구개발을 포함한 원자력 진흥업무가 중간지대에서 완충 역할을 해주는 현재 구조는 유지, 발전돼야 할 것이다.

또 원자력 연구개발의 산업부처 이관을 주장하는 이들 중 원자력이 더 이상 기초기반, 거대과학 분야가 아니라 실용화 기술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반평생을 원자력에 몸담아온 노(老)과학자의 입장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원자력 연구개발은 단순히 원자력발전소를 만들고 이를 돌리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이 아니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해 암을 진단,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중성자를 이용한 미세한 물질구조 분석으로 신약 등 신물질 개발의 기초를 닦는 연구도 원자력 연구개발의 영역이다. 앞으로 30년 뒤 실용화될 새로운 미래형 원전개발과 암 치료용 중입자 가속기 개발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포함하고 있다.

얼마 전 나로호 발사 성공으로 대한민국이 '스페이스클럽'에 가입했는데 앞으로 달을 넘어 화성과 태양계 너머까지 지평을 넓혀 우주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동위원소나 핵분열원자로를 이용한 우주원자로 개발이 필연적이다. 수십년이 소요될 이러한 연구개발을 기초기반ㆍ거대과학이 아닌 당장 써먹을 실용화 기술이라고 주장한다면 단견이 아닐 수 없다.

원자력 연구개발과 산업이용이 분리돼 있어 비효율적이라는 주장도 타당성이 부족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중심이 돼 개발한 한국형 원전과 핵연료 기술 일체를 지난 1996년 정부 정책에 따라 기술료 한푼 받지 않고 산업체에 이관했고 산업체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수출을 이뤄냈다. 세계가 인정하는 성과를 스스로 비효율이라고 깎아내려서는 곤란하다.

원자력 연구개발 등 진흥업무는 원자력발전소를 돌리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아니라 미래창조과학부가 맡아야 한다. 그것이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을 주요 축으로 하는 새 정부의 창조경제 철학에 부합할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과학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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