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복지사업가의 '황당한 변명'
김홍길 기자 what@sed.co.kr
A라는 사람이 길을 가다 우연히 '새끼줄'을 주웠다. 그런데 잠시 후 B라는 사람이 A를 자신의 '새끼줄'을 훔쳐갔다며 고소했다. 새끼줄에는 암소 한 마리가 달려 있었던 것. A씨는 그러나 "길에서 새끼줄을 줍긴 했는데 새끼줄 끝에 소가 매달려 있는 줄은 몰랐다. 이런 게 죄가 되냐"며 되레 역정을 냈다.
우습고 황당한 이야기지만 현실로 나타나면 어떨까.
복지사업을 하는 N단체를 운영해오고 있는 S목사는 다단계 판매업체인 제이유로부터 수억원대의 후원금을 받은 것과 관련,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S목사가 주 회장으로부터 세금문제와 관련한 부탁을 받고 전형수 전 서울국세청장을 만나 청탁을 한 혐의가 짙다고 보고 있다.
실제 제이유가 나눔과 기쁨에 후원한 금액 중 대부분은 S목사가 전 전 청장을 만난 뒤 건너갔고 이후 제이유의 세금도 대폭 감면됐다. 검찰은 조만간 S목사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S목사는 그러나 검찰 수사가 억울한지 15일 N단체 홈페이지에 공개해명을 올렸다. S목사는 "(주 회장의) 억울함에 대한 호소 차원에서 서울국세청장을 만난 것일 뿐 대가성을 인식한 행위가 아니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자신이 처벌을 받게 되면 기부문화가 위축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했다. 결국 제이유 후원금은 독거노인 지원사업 후원 명목으로 받은 돈이지 세무조사와는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듣고 보니 '오비이락' 격으로 S목사가 억울한 처지에 놓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자신이 운영하는 N단체에 제이유가 거액을 쾌척한 이유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확인했어야 옳았다. 이제 와서 "국세청과 접촉했지만 대가성은 없었다"고 변명하는 것은 오히려 의구심만 키울 뿐이다.
자칫 '새끼줄을 주웠는데 소가 달린 줄 몰랐다'는 변명과 다를 게 없게 된다.
그리고 기부단체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범죄 혐의에 대해 수사를 받지 않아도 될 면책특권은 없는 것인데 자신의 처벌로 기부문화 위축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다.
열악한 자선단체의 형편을 모르는 바는 아지만 평생을 자선사업으로 보내온 S목사라면 "앞으로는 정정당당한 돈만 자선사업에 쓰겠다. 그리고 거액 기부금에 대해서는 한번쯤 스스로 검증해보겠다"는 한마디쯤은 덧붙였어야 옳을 듯하다.
'좋은 일'을 위해 '검은 돈'인 줄 모르고 받아 썼기로서니 '문제가 되냐'는 식의 합리화는 오히려 '새끼줄을 주웠는데 소가 있는 줄 몰랐다'는 해명과 다르지 않다. S목사에 대한 존경의 기억이 있기에 하는 얘기다.
입력시간 : 2007/06/15 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