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니얼 고든 감독이 북한에서 직접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어떤나라’ (윗쪽)와 ‘천리마 축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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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과 北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北주민 일상 담담히 그린 다큐 '어떤나라' 26일 개봉66년 북한의 월드컵 8강 다룬 '천리마…'도 선보여
이상훈 기자 flat@sed.co.kr
대니얼 고든 감독이 북한에서 직접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어떤나라’ (윗쪽)와 ‘천리마 축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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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그대로의 모습 찍었을 뿐"
11살 소녀는 오늘도 늦잠을 잤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뜨는 밥술이 입에 붙을 리가 없습니다. 엄마는 “아침밥을 왜 남기냐”며 잔소리를 늘어놓으십니다. 오후 시간, 지겨운 체조수업에 살금살금 땡땡이도 칩니다.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데, 꼬부랑 발음은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도 다음 달에 기차타고 가는 수학여행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입니다. 아, 제 소개를 깜빡했네요. 평양 모란봉중학교 2학년 김송연이라고 합니다.
26일 함께 개봉하는 대니얼 고든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어떤 나라’(원제 A state of mind)와 ‘천리마 축구단’(원제 The game of their lives)를 보는 남한 관객은 두 번 놀랄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북한 주민들의 일상에 한 번,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모습에 또 한 번 충격을 받는다.
‘어떤 나라’의 주인공은 13살 현순이와 11살 송연이. TV 그만 보고 공부하라 꾸지람 듣고 친구들과 노래부르며 즐거워하는, 전세계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9월 열리는 전승기념일 매스게임에 뽑힌다. 연일 계속되는 연습이 힘들지만 그래도 장군님이 보러 올 생각만 하면 고된 줄도 모른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현란한 스펙터클’이라 말하는 북의 매스게임을 다루지만 카메라는 평범한 두 아이들의 일상에 정확히 초점을 맞춘다. 감독은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이라는 ‘거리 두기’에 성공했다. 이제까지 만들어진 영상물 중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가장 객관적이면서도 치밀하게 그려낸다.
평양에 산다는 자체로 특권층이라 부를 수도 있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담담한 이야기들은 제법 충격적이다. “딸의 생일, 아이에게 강냉이죽 한 그릇을 먹였다”는 송연 어머니의 담담한 말은 이 다큐멘터리의 진실을 담보하기에 충분하다.
‘어떤 나라’와 함께 소개되는 ‘천리마 축구단’은 고든 감독의 첫번째 북한 관련 다큐. 66년 영국월드컵 8강에 오르며 세계축구 역사를 다시 쓴 북한 대표팀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한다. 축구광인 고든 감독이 아버지로부터 전설로 들은 북한 대표팀의 감동적 이야기를 영상으로 풀어낸다. 이 작품을 계기로 감독은 북의 신뢰를 얻어 ‘어떤 나라’도 찍을 수 있었다.
영화는 우리가 이제까지 보지 못한 66년 월드컵의 북한 활약상을 화면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작은 체구로 빠른 전술을 구사하는 그들에게 영국인들은 흠뻑 빠진다. 불과 10여년 전, 한국전쟁에서 연합군과 인민군으로 총부리를 겨눈 그들이지만, 멋진 축구경기 앞에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이탈리아전 결승골을 작렬시킨 7번 박두익 선수를 비롯해 당시 북한 대표팀 선수들의 지금 삶도 영화에 비쳐진다. 월드컵 이후 체육영웅 대접을 받은 이들은 이제 환갑이 지난 호호 할아버지가 됐다. 그들은 자신들을 열렬히 응원했던 영국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며 추억을 간직한다.
당시의 기억을 묻는 질문에 박두익은 말한다. “축구라는 게 단지 실무적인 경기 승패를 가르는 경기가 아니라 다 친선을 도모하는데 근본이 있지 않은가 생각합네다.” 이 말, 3년 전 우리도 붉은 옷 입고 온 몸으로 배운 것 아닌가.
입력시간 : 2005/08/18 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