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보다 더 나쁜 죄악을 저지른 인간’과 ‘3개월만 더 살았어도 대공황을 막을 수 있었던 비운의 금융인’. 벤저민 스트롱 2세(Benjamin Strong Jr.)라는 동일인물에 대한 상반된 평가다. 스트롱은 미국에 중앙은행 제도가 마련된 1914년부터 1928년 10월17일 결핵으로 사망할 때까지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낸 인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제치고 실질적인 중앙은행 수장으로 군림했던 사람이다. 스트롱은 16세에 은행 심부름으로 시작해 모건 금융제국의 방계 신탁은행장을 거쳐 뉴욕 연준 초대 총재까지 오른 신화의 주인공. 모건의 앞잡이라는 질시도 받았지만 1920년 급격한 금리인상을 통한 경기연착륙은 ‘역사상 최초로 인위적 경기 침체가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월가는 물론 시티(런던 금융가)에서도 인정받던 그는 왜 엇갈린 평가를 받게 됐을까. ‘살인자보다 나빴다’라고 말한 사람은 후버 대통령. 주가가 오르던 1927년에는 금리를 내리고 침체 기미가 보이던 1928년에는 세 차례나 금리를 올리는 그릇된 정책이 투기와 주가 대폭락의 원인이라며 혹평을 내렸다. 스트롱이 ‘거꾸로 정책’을 취한 이유는 영국과 공조를 통한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중시했기 때문. 좀더 살았더라면 공황을 막을 수 있었다는 평가는 국내외 금융시장에 대한 그의 지도력이 남달랐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어느 게 맞을까. 속단할 수 없다. 경제학사상 가장 뜨거운 논쟁의 하나라는 대공황의 원인을 둘러싼 케인스학파와 통화론자 간 ‘테민 논쟁’만큼 가늠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현재 상황. 대공황 전야인 70년 전과 갈수록 비슷해지고 있다. 공급과잉과 금융지도력 부재, 예상을 넘는 금리 정책까지, 스트롱 사망 전후의 난제가 한꺼번에 재연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