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제, 시장순응 정책으로 풀자

박영범<한성대 교수·경제학>

정부는 최근 올해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를 3.8%로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내수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되고 환율절상으로 수출 신장세가 둔화되는 가운데 고유가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커지는 현실 여건을 감안한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등 민간연구기관들은 올해의 우리 경제 성장률이 3% 밑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2003년 말 배럴당 28달러하던 두바이 유가가 심리적 마지노선인 55달러를 넘어서고 대미환율이 1년여 사이에 15% 이상 절상되는 등 우리 경제의 대외적 여건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경제부진의 원인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시각차는 매우 크다. 노무현 대통령은 8일 열린 편집보도국장 청와대간담회에서 참여정부 출범 이후 경제가 부진한 것에 대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과 가계신용 불량, 카드회사 부실 등을 간과한 과오가 있지만 현재 우리 경제가 대단히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점을 역설했다. 또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역동적인 시장이 되도록 합리적이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사회문화정치 제도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에 최근의 한 대학연구소가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80%가 참여정부 전반기의 경제정책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으며 68%가 정부정책의 혼선과 리더십 부재를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대내불안 요인으로 지적했다. 당분간 지속될 고유가,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 가능성 등 우리 경제의 어려운 대외 여건보다도 우리 경제가 성장동력을 다시 찾는 것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하게 되는 이유는 정부여당과 민간의 경제현상에 대한 이와 같은 시각의 차이가 좀처럼 좁혀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정치든 사회든 안보문제든 인과관계를 한 단계만 넘어가면 전부 경제문제로 집약된다고 피력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대통령은 현재 우리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개혁함으로써 경제성장의 동력을 찾을 수 있으며 현재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면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성과를 요구하고 있으며 특히 참여정부의 임기가 절반을 넘어서고 내년부터 차기 대권경쟁에 돌입하면서 정부의 레임덕 현상이 가시화될 것이 확실시되는데 정부여당이 현재의 정책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국민에게 기다려달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망 사항이다.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를 어느 정부보다 우선시하겠다던 참여정부 하에서 가장 서민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시내 택시기사들이 택시요금 인상에 대해 항의시위를 벌인 것은 참여정부의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운영에 있어서 가장 큰 실책은 정부와 집권세력이 자신들의 힘을 과신한 것에 있다. 최근 참여정부 핵심인사가 헌법을 고치지 않고는 바꿀 수 없는 부동산 관련 법제도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헌법이 아니라 국가의 운명까지 좌우하는 것이 시장이라는 것이 구사회주의 소련의 몰락이 잘 말해주고 있다. 세계화시대의 생존경쟁은 냉혹하며 의도와는 관계없이 결과에 의해서만 평가받는다. 특히 세계 경제 운영에 있어서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지만 과거 냉전체제에서와 같은 나름대로의 세계 경제 시스템이 아직 확고히 구축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무리한 정치실험은 도박이다. 노 대통령이 일전에 언급했듯이 권력은 시장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시장의 원리에 순응하고 시장의 힘을 활용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경제부진을 타파하고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회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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