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생각하는 수사

서영제 신임 서울지검장이 13일 취임사에서 “경제사건은 종합적으로 판단해 수사착수 여부를 결정해야 하다”면서 “혐의가 있다고 모두 기소하는 것이 정의가 아니고, 수사할 때는 국가의 균형발전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검찰이 나라가 망하는 기소를 해서는 안되고, 국민이 박수 치지 않는 수사도 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비록 양형(量刑)의 일반원칙을 말한 것이라고는 하나 최근 검찰의 SK그룹에 대한 수사가 우리 경제에 미치고 있는 충격을 감안하면 그 뜻이 새롭다. 이 발언은 노무현 대통령이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개혁`을 강조하고, 고건 국무총리가 공정거래위원회에 6대재벌 내부거래조사의 중지를 지시하고 있는 것과 맞물려, 정부가 재벌개혁의 속도조절에 나서고 있다는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같은 정부의 자세변화에 대해 기업의 비리나 부실을 미봉하기 보다는 투명하게 노출시켜 바로잡는 것이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길이라는 반론도 있지만 작금의 시장동향의 심각성에 비추어 불가피한 방향선회라고 여겨진다. 흔히 검사는 수사로 말하고,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한다. SK그룹에 대한 수사는 수사로 말하려는 검사의 의지가 드물게 관철된 수사로 보인다. 대통령과 검사간의 토론에서 외압설이 불거지기도 했으나 그런 외압에 영향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그 결과 1조5,000억원에 이르는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일반국민은 물론이고 외국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어, 국내 3위 재벌그룹의 해체설과 함께 제2의 경제위기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검찰이 밝힌 혐의 내용 중에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고, 이에 대해 기업은 물론 채권단이나 회계법인도 아무런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라면 모르되, 검찰의 서슬 때문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재판을 통해서 범죄의 성격은 보다 명확히 규명돼야 할 것이다. 한가지 유의할 것은 대개 사직당국의 수사는 노름판의 판돈을 계산하듯 범죄의 규모를 키우는 속성이 있다는 점이다. 또 혐의자의 해명이 변명이나 거짓말로 치부돼 배척되는 경우도 있다. 검찰은 특히 기업에 대한 수사에서 그런 유혹이나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수사의 요체는 일벌백계다. 한 기업의 비리를 벌함으로써 다른 기업들에게 스스로 비리를 바로잡게 하는 것이 최상의 수사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조사를 한다 하면 일제조사다. 표적수사의 오해를 받지 않겠다는 이유다. 그런 조사는 요란하기만 할 뿐 실효가 적다. 재벌개혁은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다만 하나라도 철저히 해서, 다른 모두에 교훈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 경제를 생각하는 수사다. <김형기기자 k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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