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함락 후 8개월 이상 도망자 생활을 해온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13일 저녁 8시30분(현지시각) 고향 티크리트에서 미군 및 쿠르드족 특공대에 의해 생포됐다.`붉은 새벽`으로 명명된 후세인 생포 작전은 이날 오전 10시 50분 정보를 입수 후 치밀한 준비 끝에 전격 감행됐고 후세인은 변변히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붙잡혔다. 미군은 후세인이 진짜임을 확인하기까지 12시간 이상 보안을 유지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초라한 모습으로 잡힌 독재자 후세인은 미군에 의해 입이 벌려져 치열 등을 검사 받는 등 치욕적인 포로로 전락했다.
생포 순간
미군은 이날 저녁 6시 후세인이 티크리트 남쪽에서 15㎞ 떨어진 아드와르 마을의 한 농가에 은신해있다는 정확한 정보에 따라 은밀히 목표 민가를 급습했다.
이때 후세인은 민가의 땅을 파고 만든 2㎙ 깊이의 직사각형 지하실(토굴)에 은신중이었다. 일부 언론은 후세인이 생포 당시 잠을 자고 있다고도 전했다. 통풍구가 설치된 지하실은 건초더미, 벽돌 등으로 교묘히 위장돼 있어 미군은 식별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삽까지 이용해 지하 토굴을 확인, 전광석화처럼 후세인을 낚아 챘다.
후세인은 갑자기 코 앞으로 다가온 미군의 총부리에 반항도 못한 채 구덩이에서 끌려 나왔다. 미군이 공개한 현장 비디오를 보면 지하실 안에는 후세인이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간이 침대와 AK소총 2자루, 권총 1자루가 있었고 약간의 여유 활동 공간도 눈에 띄었다. 아흐마드 찰라비 이라크 과도통치위 위원은 "후세인은 체포 전 자살할 시간이 있었지만 자살하지 않았다"고 말해 후세인이 소지한 총으로 자살하지 않은 배경에 의구심을 표시했다. 아울러 2,50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린 후세인의 은신처에서는 미화 100달러짜리 묶음으로 75만 달러가, 농가근처에서는 후세인이 이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택시 2대가 발견됐다.
생포 순간 미군 병사들은 희끗희끗한 수염을 기른 후세인이 진짜 후세인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도 전했다.
4월 9일 바그다드 함락 후 8개월 간 용의주도하게 은신해온 후세인의 생포는 총 한방도 발사되지 않으면서 이처럼 허망하게 끝이 났다. 미군은 생포 사실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에 즉각 보고했고, 유전자(DNA) 검사를 통해 후세인의 진위여부를 확인한 직후에도 제일 먼저 백악관에 낭보를 알렸다.
이에 앞서 미군은 이날 오후 6시 특수부대, 4사단 1연대 등에서 차출된 병력 600명을 동원, 아드와르 마을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외곽에서 포위망을 조이기 시작, 2시간 후에는 은신처 예상지점을 2곳으로 압축했고 이어 확인작업을 거쳐 최종 타깃을 확인했다. 외곽 포위는 4사단 병력이, 현장 급습은 특공대가 맡았다.
은신처 정보는 어떻게 알았나
후세인 생포는 쿠르드족이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생포작전에 참여했다고 주장하는 쿠르드족 특수부대장 쿠스트라 알리는 "우리는 티크리와 모술에 아랍 친구들이 많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쿠르드족 활동 지역이 아닌 티크리트에서 쿠르드족 부대가 등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 하다. 또 생포 발표 수시간 전부터 쿠르드족 밀집주거지역인 키르쿠크 등에서 쿠르드족이 후세인 생포를 축하하는 총성을 울렸다는 정황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레바논 소식통들은 후세인이 각별한 애정을 표시하면서 자주 연락을 취해온 두번째 부인을 통해 정보가 미군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소식통들은 후세인의 아들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알리와 함께 레바논에서 살고 있는 부인 사미라 샤흐반다르가 은신처에 관한 정보를 미군에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