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앤 조이] 이누도 잇신 감독 '금발의 초원'

나이라는 경계 넘어 사랑이란 기적 찾기


2년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하 ‘조제’)이라는 낯선 영화가 소리소문 없이 찾아왔다. 장애를 가진 소녀와 남부러울 것 없는 소년의 ‘쿨’한 연애를 다룬 이 영화는 기묘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감수성을 가진 감독 이누도 잇신을 국내 영화팬들에게 각인시켰다. 이때 만들어진 그의 인기는 올해 ‘메종 드 히미코’에게까지 이어졌다. 이 영화는 소규모 단관 개봉으로 10만 명이라는 관객을 동원했다. 독립영화로서 10만 명은 일반영화로 치면 1,000만 관객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다. ‘금발의 초원’은 이런 이누도 잇신의 초기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작품은 ‘조제’, ‘메종 드 히미코’보다 앞선 2000년 제작된 이누도 잇신의 데뷔작. 위의 두 영화와 함께 묶여 ‘경계선 3부작’으로 불린다. 첫 영화이니만큼 따뜻한 소녀적 감수성이 앞섰던 뒤의 두 작품보다 좀더 강한 메시지가 읽힌다. ‘조제’가 장애라는 경계선에 선 사람과 정상인의 이야기를 담았고, ‘메종 드 히미코’가 성전환자라는 남과 여의 겅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금발의 초원은 나이를 그 경계선으로 삼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80세 노인 닛포리(이세야 유스케). 심장병에 걸려 평생 바깥출입을 못하던 그는 어느새 치매까지 걸려 자신을 20살이라고 믿는다. 그러던 그의 집에 18세의 어여쁜 소녀 나리스(이케와키 치츠루)가 가정부로 들어온다. 자신이 소년 때 흠모하던 ‘마돈나’를 꼭 빼닮은 그녀. 자신이 20살이라고 믿는 닛포리는 단번에 그녀를 사모하게 된다. 한편 배다른 동생에게 말 못한 연정을 품고 있던 나리스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한다. 이렇게 각자 아픔을 간직한 두 사람간은 조금씩 교감을 시작된다. 영화 내내 관객들은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 속에 80살로 설정된 닛포리 역을 20대의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다. 관객은 20대 배우가 80살노인의 행동을 하는 색다른 느낌을 체험하게 된다. 이런 기묘한 부조화를 통해 감독은 20세라는 정신적 나이와 80세라는 육체적 나이 사이에 두발을 걸친 ‘경계인’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 경계인이 17세 소녀와 교감을 하는 모습을 통해 ‘조제’나 ‘메종 드 히미코’때보다 조금 더 가슴 아픈 이야기를 펼친다. 영화 속에서 관객들은 반가운 한명의 배우를 보게 되는데 그는 나리스를 연기한 이케와키 치츠루. 괴팍하지만 한편으로 순수한 장애소녀 조제로 알려진 그녀는 이 영화에선 좀더 밝고 명랑해 보인다. 천진난만한 소녀의 이미지를 마음껏 발산하는 그녀의 모습은 강렬하다. 20대로 80대 노인의 모습을 연기한 이세야 유스케의 놀라운 활약도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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