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대만 볼거리? 빛나는 코믹연기 관객 압도

뮤지컬 '프로듀서즈' 내달 14일까지 국립극장




첫째. 상황이 바뀌면 대답도 유리하게 바꿔라. 둘째 거짓말이 들통나도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라. 돈 많은 과부 할머니들을 꾀어 투자를 받아 만든 뮤지컬이 줄곧 망하기만 해 어쩔 수 없이 사기꾼이 돼버린 뮤지컬 제작자 맥스 비알리스톡(송용태 분)의 인생 철학이다. 누구인들 사기꾼으로 인생에 오명을 남기고 싶으랴. 어느날 소심한 회계사 레오 블룸(김다현 분)의 조언으로 ‘망하는’ 뮤지컬을 만들면 제작자는 투자자에게 자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뮤지컬 제작자가 꿈인 레오와 한 조가 된 맥스는 마지막 인생을 건 ‘한탕’ 후에 ‘꿈의 낙원’ 리오로 튈 계획을 세운다. 브로드웨이 사기꾼의 ‘망하는 뮤지컬 만들기’를 그린 ‘프로듀서즈’가 막을 올렸다. 화려한 무대가 볼거리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겠거니 하고 객석을 찾은 관객들은 극중 인물에 딱 맞는 배우들의 코믹 연기에 폭소를 멈추지 못한다. 누구라고 딱 꼬집어 더 잘 한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등장 인물들이 배역에 스며들어 무대에서는 바로 그 사람이 돼 있었다. 송용태는 능청맞은 사기꾼으로 손색이 없었고, 김다현은 외모에서 풍기는 여린 모습으로 내성적이며 ‘기’죽은 레오가 됐다. 맥스의 여비서 울라 역을 맡은 최정원의 귀엽고 순박하지만 다소 모자라는 듯한 연기에는 백치미가 뚝뚝 흘렀다. 가장 눈길을 끄는 연기는 게이 연출가인 로저 드브리스의 비서이자 애인인 카멘 역을 맡은 함승현. 웬만한 여자보다 더 날씬한 몸매로 무대를 날라다니 듯 연기한 그는 말투는 물론 손끝에 실린 섬세한 연기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내 브로드웨이 배역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공연이 국내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은 데는 상황을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매끈한 번역이 한 몫 했다. 작품이 발표되기 전 미국식 코미디가 지닌 뉘앙스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압권은 게이 연출가 로저에게 작품을 섭외하기위해 맥스와 레오가 찾아간 장면. “무대 위에서는 어떤 것도 가볍게이~, 환하게이~, 즐겁게이~. 언제나 엔딩은 해피하게~, 미치게이~, 기쁘게이~, 즐겁게이~” 게이 연출가 로저 군단이 부르는 노래는 제작자들의 성 정체성을 코믹하게 풀어내 폭소를 자아냈다. 커튼콜 때 부른 앵콜곡 ‘히틀러의 봄날’은 코믹한 연기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서정적인 멜로디로 객석을 떠난 후에도 내내 입가에 맴돌았다. 사족(蛇足)-배우의 연기와 무대 장치 등 브로드웨이 작품을 이처럼 깔끔히 소화해 낸 작품에 접할 수록 우리 창작 뮤지컬에 대한 목마름이 더 한 것은 이번 공연을 본 후 또 다시 밀려든 아쉬움이다. 2월 14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501-7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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