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정상화 이대론 안된다] <상> 방만경영 눈 감은 이사회

불리한 정보 숨기고 감사원 지적 모르쇠… 갈 길 먼 투명경영
임금·예산안 등 경영 필수사항 공표 않기 일쑤
광물자원공사는 회의상정 안건 37%나 비공개
부실기업 지원 지적받은 강원랜드도 공시 안해


현오석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공기업 파티는 끝났다"며 과다 부채와 방만 경영 문제가 심각한 공기업을 질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질타한 지 보름 만으로 이후 정부는 공공기관의 책임 경영과 투명 경영을 강조하며 관련 대책을 속속 내놓았다.

하지만 현 부총리의 공공기관 개혁 드라이브 선언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방만 경영 등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22일 본지가 정부가 개혁 대상으로 꼽은 38개 공공기관, 특히 부채 상위 12개 공기업의 이사회 회의록을 전수 조사한 결과다. 공기업들은 이사회 회의록에서 임직원 등 드러내기가 민감하거나 드러내기 곤란한 정보를 여전히 숨겼다. 운영계획안과 예산안 등 경영의 필수 사항 역시 마찬가지로 밝히지 않았다. 기본적인 경영공시의 원칙도 지키지 않았다. 관련법에 따라 감사원 지적사항은 14일 이내 공시해야 하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는 기관이 대다수였다.

◇민감, 불리한 정보는 다 숨겨=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인 '알리오(www.alio.go.kr)'에 올라온 부채 상위 12개 공기업의 이사회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대다수 기관이 근로자 임금 개정안 등 민감한 사안은 회의록에 공표하지 않았다. 한국수자원공사의 2013년 12차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연봉 규정 개정안을 상정한 뒤 안건에 대한 설명은 단 한 줄도 하지 않은 채 무사 통과시켰다. 예금보험공사(2013년 13차 이사회), 광물자원공사(1,068회 이사회)도 마찬가지다. 세금을 내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이들 기관의 임직원 급여가 어떻게 인상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셈이다.

올해 운영 계획안과 예산안, 차입 계획안 등 회사 경영에 필수적인 사항을 숨긴 사례도 많았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지난 1월8일 147회 이사회에서 올해 사업계획 및 예산안, 철도시설채권 발행계획안을 가결 처리했다. 하지만 예산안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설명도 첨부하지 않았다. 광물자원공사(1,070회 이사회), 한국수자원공사(2013년 13차 이사회), 예금보험공사(2014년 1차, 2013년 12차 이사회)도 유사한 안건이 가결처리 됐지만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사회 안건의 상당수를 아예 비공개로 돌린 기관도 있다. 광물자원공사는 지난해 11월14일 이후 전체 상정 안건의 37%를 비공개 처리했다.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 제11조 9항에 "다만 이사회 회의록 중 경영 비밀에 관련된 사항은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비공개 비중이 너무 높고 안건을 관리하는 부서 이름조차 비공개로 처리한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감사원 지적사항 '모르쇠'로 일관=감사원으로부터 지적 받은 사항에 대해서도 대다수 공공기관은 기간 내 공시를 하지 않고 있다. 공운법 11조 10항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감사원 지적 사항과 이에 대한 조치 계획을 지적 받은 후 14일 이내에 공시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강원랜드다. 감사원은 3월12일 부실 기업에 150억원을 지원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강원랜드 사외이사를 포함한 전·현직 임원 9명을 해임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라고 산업통상자원부에 통보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안은 감사원 지적 후 두 달이 지난 현재까지도 공시되지 않았다. 강원랜드는 지난해 9월24일을 마지막으로 감사원 지적사항을 업데이트하지 않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도 지난해 9월16일 감사원으로부터 "2012년 2월 천연가스의 장기 수요를 과다 예측해 10조5,000억원가량의 손실을 봤다"는 지적을 받았으나 이 같은 사안을 공시하지 않았다. 한국가스공사 역시 지난해 3월27일을 마지막으로 감사원 지적사항을 공시하지 않았다.

고객만족도 설문조사 결과 마찬가지다. 공운법 11조 6항에 따라 공공기관은 고객만족도 조사 결과를 공시해야 한다. 그러나 최종 결과만 나올 뿐 질문지 내용과 각각의 결과, 표본 오차 등은 비공개 상태다. 설문조사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갤럽 정지연 기획조사부문 이사는 "질문지·표본오차 등을 모두 공개하는 것을 법적으로 강제하고 있지는 않지만 조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공개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12월 이후 알리오에 공공기관 부채 정보가 공개돼는 등 정보의 총량 면에서는 일부 개선되고 있지만 공시의 신속성·정확성은 크게 부족하고 정보의 대국민 친화도도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감사원 지적사항이 몇 달이 지나도록 공표가 안 되고 있고 공개되는 정보의 형식도 투박해 일반 국민이 이를 알아듣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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