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여 강을 건너지마오 / 임께서 강을 건너시다가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 가신 임을 어이하리오`.
(公無渡河 / 公意渡河 / 墮河而死 / 當奈公何)-
고조선 때였다. 어느날 진졸(津卒) 곽리자고가 머리가 허옇게 센 미친 사내의 뒤를 따라 물에 빠져 죽는 그 아내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 돌아와 자신의 아내 여옥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여옥은 공후라는 악기에 맞춰 그 여인의 애달픈 사연을 노래하니 듣는 사람마다 눈물을 흘렸다. 기록으로 전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노래인 이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는 진나라 혜제 때 사람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에 실려 있다.
`오락가락 꾀꼬리는 / 암수 서로 즐거운데
외롭구나 이 내몸은 / 뉘와 더불어 돌아갈꼬.`
(翩翩黃鳥 / 雌雄相依 / 念我之獨 / 誰其與歸)-
고구려 유리명왕은 황후 송씨가 죽자 화희와 치희를 후궁으로 들였는데, 두 여자가 임금의 총애를 다투다가 한족(漢族) 출신인 치희가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유리명왕이 말을 달려 쫓아갔으나 치희는 분을 풀지 않고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날 왕은 나무 밑에서 쉬다가 꾀꼬리들이 즐겁게 노는 것을 보고 이 노래를 지어 부르며 외로움을 달랬다.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 실려 있는데, 이 노래가 `공무도하가`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황조가`(黃鳥歌)이다.
우리 민족정서의 두 줄기 큰 흐름은 흥(興)과 한(恨)이다. 집단적인 놀이문화에서 흥이 비롯되었다면 한은 개인적 감정에서 비롯되었으니 `공무도하가`와 `황조가`같은 노래가 그런 정한(情恨)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천손족(天孫族)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이미 수천년전부터 이처럼 사랑이라는 인간의 본질적 감정을 노래에 실어 표현할 줄 알았던 것이다. 노래는 비록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그 힘이 끈길기기는 고대와 현대의 다름이 없다.
이러한 신명과 흥과 정한의 정서가 우리 민족 고유의 풍류정신으로 발전해온 것이다. 요즘처럼 갈수록 인정이 메마르고 세태가 각박해지는 정서불안의 시기에 사람들의 가슴을 따스하게 적셔주는 노래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황원갑(소설가) >